장자의 남화경 외편(外篇)과 잡편(雜扁)
 
장자에 대해서는 30 번째 책소개에서 자세히 설명하였다. 그러나 장자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을 위해 백과사전 브리태니커에 나오는 내용을 소개한다.
 
장자    莊子   (병)Zhangzi (웨)Changtzu.     COPYRIGHT (C)한국브리태니커회사, 1999
BC365?∼BC290?
BC 4세기에 활동한 중국 도가 초기의 가장 중요한 사상가.
본명은 장주(莊周). 그가 쓴 〈장자〉는 도가의 시조인 노자가 쓴 것으로 알려진 〈도덕경 道德經〉보다 더 분명하며 이해하기 쉽다. 장자의 사상은 중국불교의 발전에도 영향을 주었으며, 중국의 산수화와 시가(詩歌)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기록으로 본 장자의 생애
후대의 학자들이 가장 뛰어난 장자 연구가로 평가한 서진(西晉)의 곽상(郭象 : ?~312)은 장자의 저작에 처음으로 주석을 달았고, 장자의 위치를 도가사상의 원류로 끌어올렸다. 불교, 특히 선(禪) 불교의 학자들도 장자의 책을 많이 인용했다. 이러한 장자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
 한대(漢代)의 위대한 역사가 사마천(司馬遷 : ?~BC 85)은 그의 〈사기〉 열전(列傳)에서 장자의 생애에 대해 아주 간략하게 언급하고 있다. 열전에 의하면 장자는 전국시대 송(宋)나라의 몽(蒙 : 지금의 허난 성[河南省] 상추 현[商邱縣])에서 태어났고, 이름은 주(周)이며, 고향에서 칠원(漆園)의 하급 관리를 지냈다. 그는 초(楚)나라 위왕(威王 : ?~BC 327) 시대에 활동했으므로, 공자에 버금가는 성인으로 존경받는 유교사상가인 맹자와 같은 시대 사람이다. 열전에 의하면 장자의 가르침은 주로 노자의 말을 인용한 것이지만 장자가 다룬 주제가 훨씬 광범위하다고 한다. 장자는 자신의 문학적·철학의 천부적재능을 발휘하여 유가와 묵가(墨家 : 謙愛說을 주장한 묵자의 추종자들)의 가르침을 반박했다.
 또한 유가의 가르침을 반박한 어부(漁父)·도척(盜척)·거협() 등을 썼으며, 상상으로 지어낸 〈외루허 畏累虛〉·〈항상자 亢桑子〉의 저자로도 알려져 있다.
 장자는 자신의 이름을 딴 저서 〈장자〉(〈남화진경 南華眞經〉이라고도 함)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장자〉는 총 33편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4세기에 읽히던 〈장자〉는 53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는 증거도 있다. 그 이후 수많은 판본이 나왔으며 〈장자〉에 대한 다양한 해석 때문에 본래의 내용이 불분명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장자〉 내편(內篇 : 1~7권)의 7편은 대부분 장자 자신이 지은 것이 분명하지만, 외편(外篇 : 8~22편)과 잡편(雜篇 : 23~33편)은 그 자신이 쓴 것도 일부 있는 듯하나 대부분 위작(僞作)으로 보인다. 그의 인품에 대해서는 〈장자〉의 내편과 외편에 나오는 일화들을 통해 잘 알 수 있다.
관련 인터넷 링크

한국사사료연구소 자료실(원문 내려받기)
[임성삼의 주(註); 이 site에는 동양 고전의 원문이 많이 있다. 간혹 우리말로 해석한 고전도 있으니 관심 있는 사람은 이용하기 바란다.]



장자 외편(外篇)
 8. 병모(騈모; 나란히 할 병, 모자는 손수변에 어미 모자이나 컴퓨터에서 지원되지 않는 글자이다)
  ... 몸을 굽혀 예악을 행하고, 안색을 부드럽게 하여 인의를 강론하면서 천하의 인심을 달래는 것은 자연의 진상을 상실시키는 것이다.
   하인과 하녀가 양을 치고 있었는데, 그만 두 사람 모두 양을 놓치고 말았다.
하인에게 왜 그랬냐고 물었을 때 그는 채찍을 들고 책을 읽었노라고 했고,
하녀에게 물었더니 그 때 도박을 했노라고 대답했으니,
두 사람은 한 짓은 다를지언정 양을 잃은 점에서는 공통된다.
[임성삼의 주(註); 나쁜짓을 하여 인간의 본성을 파괴하는 것과, 예절과 인의로 인간의 자연적인 성질을 망가뜨리는 것이 다를 바가 없다는 것에 대한 비유이다.]
 
9. 마제(馬蹄; 말 마,굽 제 - 말의 발굽)
 
말은 그 발굽으로 서리와 눈을 밟을 수 있고, 그 털로 바람과 추위를 막고, 풀과 물을 먹이로 삼고 발을 추어올리며 뛰어다니니, 이것이 말의 본성이다. 고대광실, 임금의 궁전이 있다 해도 말에겐 쓸모 없다.
 
 그런데 백락이 등장하면서부터 "내가 말을 기르는데 정통하다"고 호언하면서,
결국은 쇠로 달구고, 털을 깎고, 발톱을 깎아 내고, 고삐로 목을 매고, 다시 두 앞다리를 묶어 구수와 나무 널에다 차례로 매어 놓으며 못 살게 구니 열 마리 가운데 두세 마리는 죽고 말았다
  거기다가 훈련을 시킨답시고 굶기고, 목마르게 달리고 뛰게 하였는가 하면, 일제히 정렬을 시켜 늘어놓기도 하였다. 앞에는 재갈에 끈을 달아 꼼짝 못하게 하였고, 궁둥이엔 채찍으로 위협하니, 결국 죽어가는 말이 절반은 넘었다.
[임성삼의 주(註); 요즈음 우리나라의 교육이 생각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모든 사람들에게 영어를 강요하고, 대학에서 멀쩡한 우리말을 두고 영어로 강의하고...
 47 번째 소개한 전국책에서 나온 백락일고(伯樂一顧)의 그 백락이다. 교육이 피교육자의 본성을 자연스럽게 진보시켜야 한다는 개념이다.]
   그런데도 "백락은 말을 잘 기른다"고 칭찬한다. ...
정치하는 사람들도 백성을 못 살게 굴면서도 백성을 잘 다스린다고 말할 테니 백락과 같은 과실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
   백성에겐 상성(常性)이 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베를 짜서 옷을 입고, 논을 갈아 곡식을 먹기 마련이니, 이것은 모든 사람의 공통된 요구다. 자연의 뜻대로 혼연일체 되어 인위적으로 편당을 하지 않는 것을 "하늘의 뜻에 따른 방임(放任)"이라 한다.
   성인(聖人)이란 족속이 나타나면서,
몸을 굽혀 예악(禮樂)을 지키면서 천하 백성의 외모를 고치려 들었고,
또 인의(仁義)를 높이 추켜들면서, 그를 우러러 천하 백성의 마음을 달랬으니
그로부터 순박했던 백성들은 비로소 자기를 과장하면서 지혜를 즐겼으니,
결국은 앞을 다투어 이익을 추구하느라 아무도 제지할 수 없는 혼란에 이르고 말았다.
이는 곧 성인의 죄인 것이다.
 
10. 거협(겨드랑 거, 상자 협)
  남의 상자를 열고 자루를 뒤지면서, 궤를 여는 도둑을 예방하기 위하여 사람들은 노끈으로 단단히 매고, 자물쇠를 채워 두기 마련이다. 이것이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지혜라는 것이다.
  그러나 큰 도둑이 오게 되면 그 궤와 자루를 송두리째 등에 메고 도망가면서 노끈과 자물쇠가 단단하지 않을까 오히려 걱정할 따름이다. 그렇다면 아까 말한 바 있는 지혜로운 사람은 결국 큰 도둑을 위해 재물을 모아둔 것에 지나지 않는가?
[임성삼의 주(註); 자주 인용되는 이야기이다.]
   도척(盜 ; 훔칠 도, 발바닥 척)의 도당이 도척에게 물었다.
[임성삼의 주(註); 도척은 그 당시 가장 유명한 도적의 이름이다. 그 형은 매우 착실한 사람인 유하계였다.]
  "도둑에게도 도(道)가 있나요?"
 도척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어디를 가나 도가 없을 수야 있나?
말하자면 집안에 간직한 재물을 짐작하는 것은 신령스럽기 때문에 성(聖)이라 할 것이요,
앞장서서 들어가는 것은 용(勇)이요,
나중에 나오는 것은 의(義)요,
사태를 보아 안전하고 위급함을 판단하는 것은 지(知)요,
훔친 것을 고르게 분배하는 것은 인(仁)이다
.
이 다섯 가지를 갖추지 않고서 큰 도둑이 된 사람은 천하에 없는 것이다. "
  이렇게 본다면 선을 행하는 사람도 성인의 도를 따르고, 도둑도 성인의 도를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에 선인은 적고 악인은 많다. 그러므로 성인이 세상을 이롭게 함은 적고 해를 미침이 많은 것이 된다.
[임성삼의 주(註); 이 이야기도 흔히 인용된다. 쿠데타를 하기 위해서도 위의 다섯 가지가 모두 필요했다. 고루 분배하기 위해 대통령자리까지 이어가며 했으니까.]
......
 
12. 천지(天地)
... 요임금이 화주라는 고장에 갔을 때 그곳의 봉인(封人; 국경을 지키는 사람)이 말했다.
  "아, 성인(聖人)이시여! 성인의 장수(長壽)를 빕니다."
  요는 대답했다.
  "천만에요, 저에겐 그게 필요 없습니다."
  "그러면 부자가 되시길 빕니다."
  "천만에요, 그것도 필요 없습니다."
  "그러면 아드님을 많이 두시지요."
  "천만에요, 그것도 필요 없습니다."
  봉인이 의아하여 물었다.
  "수(壽)와 부(富)와 다남(多男)은 모든 사람이 기원하는 것입니다. 선생 혼자만 싫다 하니 무슨 까닭입니까?"
  요가 대답했다.
  "아들이 많으면 근심이 많고, 돈이 많으면 일이 많고, 장수하면 욕됨이 많은 법이요. 이 세 가지는 덕을 길러주지 못하기에 거절한 것입니다."
  봉인이 다시 물었다.
  "나는 처음에 선생을 성인인 줄 알았더니 평범한 군자에 지나지 않는군요. 하늘은 모든 사람을 낳아 주고, 거기에 응분의 직업을 내려 주었습니다. 아들이 많다 해도 적당한 직업을 주면 무슨 근심이 있겠고, 돈이 많다 해도 그 재물을 사람에게 분배하면 무슨 일이 있겠습니까? ...
  천하에 도가 있을 때엔 만물과 더불어 번창하고 천하에 도가 없을 때엔 덕을 닦으며 은거하는 것입니다. 천 년 만 년 살다가 세상이 싫어지면 속세를 떠나 하늘로 올라 저 하얀 구름을 타고 천지가 합일한 세계에 머무를 것입니다.
  이런 경지에서는 앞의 세 가지는 근심이 아닌데 무슨 욕을 받는단 말입니까
?"
  봉인이 떠나려하자, 요는 물을 것이 있다고 쫓아왔으나,
봉인은 끝내 "물러가라!"는 말을 남긴 채 사라졌다.
 
13. 천도(天道)
 
제나라 환공이 방에서 책을 읽고 있었는데, 마침 윤편(扁)이란 자가 당하(堂下)에서 수레바퀴를 깎다가 망치와 끌을 내 던지고 올라와 말을 걸었다.
[임성삼의 주(註); 앞에서의 궁중 도살자와 군주가 말하는 것이나, 여기의 수레바퀴를 깎는 사람과 군주와의 말하는 것으로 보아 이 당시의 분위기가 상당히 자유스러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삼가 아룁니다. 공께서 읽으시는 책에는 무엇이 적혀 있습니까?"
  "성인의 말씀이다."
  "그 성인은 지금 살아 계시나요?"
  "벌써 죽었지."
  "그렇다면 공께서 읽으시는 것은 옛 사람의 찌꺼기겠군요!"
  "내가 책을 읽는데, 수레나 고치는 장인의 말로서는 너무 당돌하군! 네 말에 일리가 있다면 몰라도, 없다면 당장 죽이고 말 것이다."
  윤편은 차근히 대답했다.
  "소신은 저 나름대로의 경험으로 말씀드린 것입니다.
  수레바퀴를 깎는데, 서서히 깎으면 헐렁해서 꽉 끼이지 못하고, 총망하게 깎으면 너무 죄어서 들랑거릴 수 없습니다. 서서히도, 총망하지도 않게 해야 하는데, 그것은 내 손에 익혀 마음에 짐작되는 일이니 입으로는 도저히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아무튼 말할 수 없는 어떤 기술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마는, 이것은 자식에게 가르쳐 줄 수도 없거니와, 자식도 배울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는 가운데 나이는 70이 되어도 아직 수레바퀴를 깎고 있습니다.
  옛날의 성현들도 자기 것을 전하지 못한 채 죽었을 것이니, 공께서 읽으시는 책도 기껏해야 옛날의 성인이 남긴 찌꺼기가 아니겠습니까?"
[임성삼의 주(註); 수레의 바퀴와 몸체를 잇는 굴대 부분을 말하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한 기술은 상당한 정밀성을 필요로 하였다.
 논어를 자세히 읽어보면 공자를 모시고 수십 년간 배운 사람들의 말의 수준이 공자의 말에 못 미치는 것을 알 수 있다. 책으로가 아니라 직접 강의를 들으며 수십 년 동안 배운 제자들도 선생님의 수준에 이르지 못한 것이다.
 약간 다른 내용이나 논어에 나온 말이 생각난다. 인능홍도 비도홍인(人能弘道 非道弘人). 사람이 학문의 내용과 분야를 넓히는 것이지, 학문이 나를 넓혀주는 것이 아니다.]
 

14. 천운(天運)
 
삼황오제의 예의나 법도는 배, 귤, 유자 같은 것이지요. 그것들이 서로 맛은 다르지만, 입에 당기는 점에서는 같습니다. 그러기에 예의나 법도 같은 것은 때에 따라 바뀌어야 합니다.
  지금 원숭이를 데려다가 주공(周公)의 옷을 입힌다면, 원숭이는 반드시 그 옷을 물어뜯고 찢고 하여 벗어 던져야 만족할 것입니다.
[임성삼의 주(註); 지금 야만적인 사람들에게 주공의 높은 이상을 실현하려면 안 된다는 말이다.]
   고금(古今)의 차이를 본다면, 이는 원숭이와 주공의 차이나 같습니다.
절세 미인이었던 서시는 가슴앓이로 찡그리면서 그 마을을 다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마을의 한 추녀가 서시의 찡그린 모양을 보고 감탄하여, 집에 돌아가서는 가슴을 부여잡고 온 마을을 찡그리고 다녔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 동리의 한 부자는 문을 잠그고 나오지 않았으며, 한 가난뱅이는 자기 처자를 거느리고 떠나기까지 했습니다.
  그 추녀는 찡그리는 서시의 아름다움을 알면서도, 그것은 서시가 근본적으로 아름다웠기 때문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유감스러운 일입니다만, 당신의 선생께서도 이 추녀와 같이 곤경을 당하게 될 겁니다.
[임성삼의 주(註); 공자가 다른 나라로 유세를 간다고 하자 어떤 사람이 평한 것이다. 자기가 성인의 이상을 실현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다.]
   공자는 51 세가 되었으나 그의 도가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남쪽으로 패(沛; 늪 패) 땅에 가서 노자를 만났다.
  노자가 말했다.
  "당신이 왔구려! 듣자니 당신이 북방의 현인이라 하더군요. 당신도 도를 체득(體得)한 바 있소?"
  공자가 대답했다.
  "아직 못했소."
[임성삼의 주(註); 논어에도 공자와 노자가 만났다는 이야기가 간략하게 나온다. 그러나 이곳에는 너무 길어 중요한 이야기만 싣는다.]

..... 노자는 차근차근 말했다.
  "..... 부를 탐한 자는 재물을 남에게 양보하지 않고, 명예를 탐한 자는 명성을 남에게 양보하지 않고, 권세를 사랑하는 자는 권세를 남에게 양보하지 않는 법입니다.
 그들은 권세를 잡으면, 행여 그것이 없어질까 떨고, 권세를 놓으면 그것을 슬피 여기면서 조금도 진실에 눈길을 돌리는 일 없이, 오직 끊임없이 발버둥치고 있으니, 이들을 천벌을 받은 백성이라 합니다. ....."
   공자는 노자를 만나고 돌아가서는 사흘이나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15. 각의(刻意)
  [선비를 다섯 가지로 나누어 분석하였다. 그 후]
...... 광채는 있으나 결코 반짝이지 않고,
성실하지만 결코 고집하지 않고,
잠을 자면서도 꿈을 꾸지 않고,
깨어 있으면서도 근심하는 일이 없다.
  그 정신은 그만큼 순수하며, 또한 그 영혼은 피로를 모른다
.
......
  속담에,
"대중은 이익을 따르고,
청렴한 선비는 명예를 따르고,
어진 사람은 의지를 따르고,
성인은 정신을 추구한다."
 
16. 선성(繕性; 기울 선, 성품 성)
...... 옛날부터 자기 몸을 잘 보존하는 사람은
부화(浮華)한 언변으로 작은 지혜를 꾸미려 하지 않았고,
또 그 작은 지혜로 천하를 알려 하거나, 자연의 덕을 알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만
홀로 자기 위치를 지키며 본성으로 돌아가려 한 것뿐이니, 여기에 무슨 인위적 노력이 필요했겠는가?
 도란 본래 작위적인 것이 아니고, 덕이란 본래 지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인위적인 지혜는 덕을 손상하고, 인위적인 작용은 도를 손상한다.
그러기에 옛말에도 <자기 몸을 바로 잡을 뿐이다>라고 했지 않는가?
이처럼 자기 천성으로 아무 것에도 손상 당하지 않는 즐거움을 얻는 것을 <득지(得志)>라고 한다.
 

17. 추수(秋水)
 
[장마에 황하의 신인 하백(河伯)이 북해로 나가 큰 바다를 보고 그 크기에 놀랐다. 북해의 귀신 약(若)이 말한다.]
  "우물안 개구리에게 바다의 얘기를 들려줄 수 없는 것은 그 개구리가 우물 안 작은 공간에 구속된 까닭이며,
여름 벌레에게 얼음 얘기를 들려 줄 수 없는 것은 그 벌레가 여름이란 한 계절에 지배당했기 때문이요,
시골 선비에게 큰 도를 들려 줄 수 없는 것은, 그 선비가 고리타분한 예절과 교육에 속박당해 있기 때문이다."
......
   사람이 알고 있는 것을 헤아려 보면, 결코 알지 못한 것만큼 많은 것은 아니다.
  또 생존하는 시간이란 결코 태어나기 이전의 영원처럼 그렇게 유구한 것이 아니다.
  이처럼 사람은 유한한 지혜로 그 무궁한 경지를 추구하고 있으므로 결국은 미혹과 혼란에 빠져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마는 것이다.
[임성삼의 주(註); 이 논리의 잘못된 점을 논리적으로 분석해 보라.]
......
  당신은 연나라의 소년이 조나라 서울 한단에 가 걸음걸이를 배웠다는 말을 들었는가? 그 소년은 조나라의 걸음걸이도 배우지 못했는가 하면, 자기 원래의 걸음걸이도 잊어 별수 없이 손으로 땅을 짚고 기어 돌아왔다는 것이다.
[임성삼의 주(註); 이것은 지나친 과장이다.
그러나 외국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다른 나라의 말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자기나라의 좋은 표현을 잊는 경우는 있을 수 있다.
더욱이 다른 나라의 문화와 정신적인 면을 배우는 과정에서는 상당한 가능성이 있는 비유이다.]
   장자가 복수라는 강에서 낚시질을 하는데, 초나라 왕이 두 대부(大夫)를 보내어 왕의 뜻을 알렸다.
  "국내 정치를 선생님께 맡기고 싶다 하옵니다."
  장자는 낚싯대를 든 채 거들떠보지도 않으면서 말을 했다.
  "나는 초나라에 신령스런 거북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 거북이 죽은 지 3천 년이나 되었건만, 왕은 그것을 비단으로 싸서 상자에 넣어 종묘에 모시고 국사를 점쳤다고 하더군.
  도대체 이 거북은 차라리 죽어서 뼈를 남겨, 그 뼈로써 사람들께 존대를 받으려 했을까? 아니면 차라리 살아서 진흙 속에 꼬리를 끌며 기어다니길 바랐을까?"
  두 대부가 대답했다.
  "물론 살아서 진흙 속에 꼬리를 끌며 기어다니기 바랐겠지요."
  장자가 말했다.
  "그만 두고 물러가게! 나도 꼬리를 끌며 진흙 구덩을 기고 싶군!"
[임성삼의 주(註); 장자는 일생동안 가난하게 산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초나라의 가장 높은 직위를 이렇게 팽개쳤다.]
 
  혜자가 양나라 재상이 되자, 장자가 찾아갔다. 어떤 사람이 혜자에게 말했다.
  "장자가 오는 것은 당신을 대신하여 재상이 되려는 것입니다."
  이에 혜자는 질겁을 하고, 사흘 밤낮에 걸쳐 장자를 수색했다.
  장자가 나타나 혜자를 만났다.
  "남방에 원추(봉황의 일종)라는 새가 있는데 당신도 알고 있는지요?
그 새는 남해로부터 북해까지 그렇게 멀리 나는데도 오동나무가 아니면 앉지 않고, 죽실(竹實;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고, 단 샘물이 아니면 마시질 않는다고 해요.
  그런데 마침 소리개썩은 쥐를 먹으려는 참인데, 원추가 그곳을 지나게 되자, 소리개는 지레 겁을 먹고 머리를 추켜들더니 <깍>하고 소리쳤다고 해요.
  당신은 지금 당신이 누리고 있는 양나라의 재상이라는 먹이 때문에 나를 향해 소리치는 거요?"
[임성삼의 주(註); 혜자 같은 사람은 지금도 많은 것 같으나, 장자 같은 사람은 왜 드문지 알 수 없다.]
 
  장자와 혜자가 호라는 강(江)의 다리에서 노닐 때, 장자가 말했다.
  "고기가 한가히 노니는군, 이것이야말로 고기의 즐거움이야!"
  혜자가 받아 넘겼다.
  "자네가 물고기가 아닐진대, 어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안단 말인가?"
  장자가 다시 받아 넘겼다.
  "자네가 내가 아닐진대, 어찌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모르는 줄 안단 말인가?"
  혜자도 끝내 대꾸했다.
  "내가 자네가 아니니 자네를 알 턱이 있나? 같은 이치로 자네가 물고기가 아니니, 자네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모르는 것은 당연한 걸세."
  장자가 다시 말했다.
  "이야기를 처음으로 다시 돌려 해보세. 자네가 처음에 '내가 어찌 고기의 즐거움을 아느냐'고 말한 것은, 자네가 이미 내가 고기의 즐거움을 알고 있는 줄 알고 나에게 물었던 것일세.
나는 지금 호수의 다리 위에 선 채 고기와 함께 즐기고 있기에 그 고기의 마음을 아는 것일세."
[임성삼의 주(註); 이 정도로 논리에 치중한 끈질긴 대화를 보지 못했다. 무위를 주장하는 사람이 이렇게 끈질기게 지지 않으려 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우는 사람으로서는 이 정도의 끈기가 반드시 필요하다.]
 

18. 지락(至樂)
 
나는 무위(無爲)를 참된 즐거움으로 여긴다
. 그러나 그것이 속인들에게는 커다란 고통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기에 옛말에
  "극치의 즐거움이란, 육체적인 즐거움이 아닌 것을 즐거움으로 삼고,
극치의 영예란 명예가 없는 것을 영예로 여긴다."라고 하였다.
......
 
 
19. 달생(達生)
... 세속을 버리면 육체는 수고롭지 않고, 생명을 망각하면, 정신이 온전하다.
......
  공자가 초나라를 가는 도중 어느 숲을 지나갈 때 한 꼽추가 매미를 잡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 꼽추는 줍기라도 하듯이 잡고 있다. 그것을 본 공자가 물었다.
  "참 묘하군! 무슨 비법이라고 있는가?"
  꼽추가 대답했다.
  "있지요. 매미가 나오는 오뉴월에 장대 끝에 동그란 흙덩이 두 개를 놓고 그것을 떨어뜨리지 않으면 매미를 놓치는 수가 적게 됩니다. 다시 세 개를 놓고 떨어뜨리지 않으면, 매미 열 마리 가운데 한 마리쯤 놓치게 되고 더 나아가서 다섯 개를 장대 끝에 놓고 떨어뜨리지 않으면, 매미를 줍기라도 하듯이 잡을 수 있습니다. 이는 바로 매미로 하여금 사람이 오는 것을 의식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매미를 잡는 내 몸짓은 나무등걸을 꺾듯이 무감각하고 내 팔뚝을 놀리는 것도 마른 나무의 가지처럼 부동의 자세입니다.
  비록 천지가 크고, 만물이 많다 할지라도 내 마음속엔 오직 매미의 날개만을 알 따름입니다. 나는 내 몸을 부동한 채로 지니면서, 다만 매미의 날갯죽지만으로 온통 채우고 있을 뿐, 그 어느 것으로도 대치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무엇인들 잡지 못하겠습니까?"
  공자는 제자들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뜻을 분산시키지 않고, 정신을 집중한다는 말은 바로 이 매미 잡는 노인을 두고 한 말이군!"
[임성삼의 주(註); 이런 정신을 가져야 자기 분야의 달인(達人)이 될 수 있다. 정신의 집중과 반복된 훈련이 중요하다.]
   전개지라는 선비가 주나라의 위공을 만났다. [위공이 양생(養生)하는 법을 물었다.]
  "저의 선생님께서는 '양생을 잘하는 사람은 양을 치는 것과 같다. 뒤에 처진 것을 주시하여 채찍질하라'고 하셨습니다."
  왕이 말했다. "왜 그런가?"
  "노나라에 선표라는 은사가 있었는데, 바위 속에 숨어 물이나 마시며 살면서도 남들과 한데 어울려 명리(名利)를 다투지 않았답니다. 나이 70에도 오히려 동안(童顔)을 가졌다 했지만, 불행히도 굶주린 호랑이에게 잡혀 먹고 말았습니다.
  또 하나는 장의란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부귀한 집 앞을 지날 때는 잔걸음으로 지날 정도로 예의를 갖추었으나, 나이 겨우 40에 열병으로 죽고 말았습니다.
  선표는 그 마음을 잘 길렀으나, 호랑이가 그 육체를 먹어 삼켰고, 장의는 그 외형을 잘 다스렸으나 병이 그 속마음을 침노했던 것입니다. 이 두 사람은 모두 한쪽으로 치우쳐 그 뒤떨어진 곳을 채찍질하지 못했기 때문에 죽음을 당한 것입니다."
  
  기성자라는 사람이 제왕을 위해 투계(鬪鷄)를 길렀는데, 열흘이 되자 왕이 물었다.
  "닭이 싸울 만하냐?"
  "아직 안됐습니다. 지금에야 비로소 뽐낼 줄을 알고 제 기운을 믿고 있습니다."
  열흘이 지나자, 왕은 또 물었다.
  "아직도 안됐습니다. 남의 닭을 보면 그냥 덤벼들려 할뿐입니다."
  열흘이 지나자 왕이 또 물었다.
  "아직도 멀었습니다. 적수의 닭을 만나면 다만 똑바로 노려보면서 혈기에 차 있을 뿐입니다."
  열흘이 지나자 왕은 또 물었다.
  "이제는 됨직합니다. 적수의 닭 소릴 들어도 기색을 변치 않고, 마치 적수를 나무로 만든 닭처럼 우두커니 바라볼 줄 아니, 자연의 덕을 갖춘 것입니다. 이만하면 적수들이 감히 덤비지도 못할 것이며, 아마 도망치고 말 것입니다."
[임성삼의 주(註); 지금처럼 무한경쟁이라는 말을 많이 하는 세대에 필요한 개념인지도 모르겠다.
단, 나는 지금을 무한경쟁의 시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노나라의 이름난 목수인] 재경이 나무를 깎아 거라는 악기를 만들었다. [너무 정교하여] 보는 사람마다 귀신이 만든 것이라고 의심할 정도였다. 노나라 제후도 그것을 보고 감탄한 나머지 물었다.
  "너는 무슨 기술로 이렇게 만들었느냐?"
  재경이 대답했다.
  "신(臣)은 목수에 불과하거늘, 무슨 기술을 운운하십니까?
그러나 한 가지쯤은 있습니다. 신이 거를 만들 때 일찍이 정신을 소모해 본 적이 없었고, 그 대신 목욕재계하여 마음을 안정시켰습니다.
  재계한 지 사흘이 되면, 감히 상이나 벼슬 따위의 욕심이 사라지고,
재계한 지 닷새가 되면, 감히 명예에 대한 비난이나 찬사, 일에 대한 성패 따위의 사념(邪念)이 사라지고,
재계한 지 이레가 되면 자기가 지닌 육체마저도 망각하게 됩니다.
  이 때가 되면 공사(公私)나 조정에 대한 생각은 까맣게 없어지고 조각에만 전심할 뿐, 외부의 혼란스런 일들을 깨끗이 잊고 맙니다. 그런 뒤라야, 산으로 들어가 천성 좋게 자란 나무들을 살피다가 나무 생김새가 정묘하여 악기를 만들기에 적당하다 생각되면 그때서야 가공을 시작합니만, 그렇지 않으면 그만둡니다.
  이것은 나무라는 자연을 내 마음의 자연과 합치시키는 일입니다. 이 악기가 귀신의 힘을 빌어 만들어졌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자연에 순응했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임성삼의 주(註); 번잡한 예절이나 법률이 자연스럽지 않다고 하는 장자(莊子)가 기술에 대해서만은 세심하게 노력해야 이루어진다고 주장한 것에 주의하라. 
 앞에서 나온 소 잡는 기술, 마차바퀴를 깎는 기술, 심지어는 매미를 잡는 기술이 모두 칭찬하는 분위기에서 언급되고 있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법률가들도 잘 알지 못할 정도로 복잡한 법률에는 비판을 가하지 못하면서,
사람들을 편하게 해주는 여러 기술이 사람의 본성에 어긋나며 자연스럽지 못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잘 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요 임금 시절 이름난 목수인 공수는 맨손으로 원을 그려도, 컴퍼스를 사용한 이상으로 둥글었다. 그것은 손가락이 컴퍼스와 같은 무심의 경지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정신은 하나로 통일되어 아무 것에도 구속받는 일이 없었다.
 

20. 산목(山木)
 
장자가 어느 날 산속을 거닐다가 가지와 잎이 무성한 큰 나무를 보았다. 그런데 나무꾼은 그 옆에 선 채 베지 않고 있었다. 장자(莊子)가 그 까닭을 물었더니 "쓸모가 없다."는 대답이었다. 그러자 장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 나무는 무용한 탓으로 천부의 수명을 누리고 있는 것이구나!"
  장자는 그 산을 내려와 어느 친구 집에 묵게 되었다. 친구는 반가운 나머지 하인에게 거위를 잡으라고 명했다. 그런데 하인이 물었다.
  "하나는 잘 울고 하나는 울지 못하는 데, 어느 것을 잡을까요?"
  주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울 줄 모르는 놈을 잡아라."

  이튿날 장자의 제자가 물었다.
  "어제 산중에서 본 큰 나무가 무용한 탓으로 천부의 수명을 누렸다고 하셨는데, 오늘 죽게 된 거위도 무용한 탓으로 죽게 되었으니, 선생님은 유용과 무용 중 어느 곳에 몸을 두시려 합니까?"
  장자가 웃으며 말했다.
  "나는 유용과 무용 사이에 처신하려고 한다. 유용과 무용의 중간 지대에 처신한다는 것은 도에 가까운 듯하지만 참다운 도는 아니며, 따라서 세상의 도를 벗어나지는 못한다.
  그러나 저 무위의 덕을 지니고 세상을 노니는 사람은 그렇지 않다. 그는 명예도 비난도 듣는 일이 없고, 어느 때는 용처럼 몸을 드러내고, 어느 때는 뱀처럼 몸을 감추기도 하여 시대를 따라 변화하면서 어는 한 가지에 편중하는 일이 없다. ..."
[임성삼의 주(註); 결국 곤란한 질문을 피하느라고 노력하여 더 큰 개념을 보여준다.]
   곧게 솟은 나무는 먼저 목수에게 베이고, 달디단 샘물은 먼저 마른다.
   옛적에 나는 노자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스스로 과장하는 사람은 성공할 수 없고,
스스로 공적을 과신하는 사람은 실패하고,
스스로 명예를 표방하는 사람은 자멸한다."
  공자가 자상호에게 물었다.
  "내가 두 번이나 노에서 추방당했고,
송나라에선 하마터면 쓰러지는 나무에 치일 뻔했고,
위나라에선 내 발자국까지 파내는 배척을 당했고,
상나라와 주나라에선 곤경에 몰렸고,
진나라와 채나라에서는 포위당해 죽을 뻔했습니다.
내가 여러 차례의 환난을 겪는 동안 친구들은 멀어지고, 제자조차 뿔뿔이 흩어지니 이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임성삼의 주(註); 이에 대한 자상호의 대답은 모호하여 이해하기 힘들다.
그러나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공자도 힘든 경우를 많이 당하였다는 사실이다.]
  군자들의 사귐은 물처럼 담담하지만, 소인의 사귐은 감주와도 같이 달콤하다. 군자는 담담하기에 오래오래 사귈 수 있지만 소인은 달콤하기에 쉽게 끊기고 만다.
[임성삼의 주(註); 논어에 동일한 말이 나온다.]
 
  장자가 누더기 옷을 기워 입고, 헤어진 신을 끈으로 동여맨 채 위나라 왕의 앞을 지나자, 위왕이 물었다.
  "선생은 왜 이리 병색이 있습니까?"
  장자가 대답했다.
  "가난 때문이지, 병으로 그런 것은 아니오. 선비가 도덕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천하에 실행할 수 없는 것은 병이요, 옷이 해지고 신이 뚫어진 것은 병이 아닙니다. 내가 당한 고통은 바로 때를 만나지 못한 것입니다.
   왕께서는 원숭이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놈이 녹나무, 가래나무 같은 곧고 단단한 나무에서 노닐 때에는 그 가지를 휘어잡고 칙칙한 나뭇잎 사이를 거드럭거리며 재주를 부립니다. 비록 예나 봉몽 같은 명궁(名弓)도 그를 확실히 감지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석류나무, 사기나무, 탱자나무, 구기자나무 따위의 가시 많은 나무에서 노닐 때에는 행동을 조심하여 주변을 훑어보면서 부들부들 떨기까지 하는데, 이는 원숭이의 근육이나 뼈가 갑자기 굳어진 때문이 아니요, 원숭이가 있는 곳이 불편해서 그 재주를 충분히 부릴 수 없는 것입니다.
   선비가 난세를 당해서도 마찬가집니다.
지금 나는 어두운 임금과 어지러운 재상 사이 처해 있습니다. 병들지 않으려 해도 어찌 병들지 않겠습니까? ...
 
  장자가 조릉이란 곳에서 거닐고 있을 때, 이상한 까치 한 마리가 남쪽에서 날아오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날개가 일곱 자나 되는데다, 눈의 직경이 한 치나 되어 보였다. 장자의 머리를 스치더니 저쪽 밤나무 숲에 내려앉았다.
  장자가 말했다.
  "저것은 무슨 새일까? 날개가 저리도 큰데 날지도 못하고, 눈이 저리도 큰데 사람도 보지 못한담?"
  장자는 바지를 걷고 잔걸음으로 그쪽으로 갔다. 그리고 활을 뽑아 들고 그 옆에서 서 있었다.
  그런데 우연히도 한 마리의 매미가 시원한 그늘에서 아무 것도 모르고 흥나게 울고 있었고,
그 뒤로는 한 마리의 당랑[연가시; 사마귀]가 잎사귀에 숨어 매미를 노려보느라 정신을 쏟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그뿐인가? 그 뒤로는 아까 보았던 괴이한 까치가 이제는 그 사마귀를 노리느라 식욕에 탐한 나머지 얼을 놓고 있지 않는가!
  장자는 소스라치게 놀라 말했다.
  "아 생물이 서로가 이익을 위해 침해하고 남을 모해(謀害)하다가 결국 자기가 위태롭구나!"
  활을 내던지고 돌아섰다. 이번에는 과원지기가 밤을 훔치는 줄 알로 욕을 퍼부었다.
  장자는 집에 돌아와 사흘이나 우울한 채 날을 보냈다. ...
 
  양자가 송나라에 가는 도중 어느 여관에 들었다. 여관 주인이 두 사람의 첩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그 중의 하나는 곱고, 하나는 박색(薄色)이었다. 그런데 박색의 첩은 귀염을 받고, 예쁜 첩은 오히려 박대를 받고 있기에 양자가 그 까닭을 물었더니, 여관 주인이 이렇게 대답했다.
  "미인은 자기가 아름답다는 것을 자만하기에 나는 그녀의 아름다움을 모르며, 박색의 여인은 자기가 미운 것을 겸양하기에 나는 그녀의 추함을 느낄 수 없습니다."
  양자는 그 말에 감동한 나머지, 제자들에게 말했다.
  "제자들아! 잘 기억해 두라. 어진 행실을 하면서 자기가 어질지 않다고 생각하면, 어디를 간들 남의 사랑을 한 몸에 받지 않을까?"
 

21. 전자방(田子方)
......
  장자(莊子)가 노나라 애공을 찾은 일이 있다. 애공이 말했다.
  "노나라엔 선비가 많으나, 선생의 도를 배우는 사람은 적습니다."
  장자가 말했다.
  "노나라엔 선비가 많은 것이 아니라 적습니다."
  "온 나라 사람이 유생(儒生)의 옷을 입고 있는데, 왜 적다고 합니까?"
 
 "제가 듣기에 둥근 갓을 쓴 유생은 천시(天時)를 알고, 모난 신을 신은 사람은 지형을 알고, 오색실에 구슬을 꿰찬 사람은 어떤 일을 당하면 결단을 잘 내린다고 하더군요. 군자가 도를 지니고 있다고 해서 그 복장을 꼭 입을 필요는 없는 것이며, 그 복을 입었다고 해서 그 도를 안다고 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상감께서 진실로 그런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온 나라에 '그 도를 모르면서 도의 복장을 한 자는 사형에 처한다'라고 준엄히 경고하지 않습니까?
  과연 애공이 호령한 지 닷새째, 노나라 전국엔 유생의 옷을 입은 사람이 없어졌다. 그런데 오직 한 사람이 유생의 옷을 입고 대궐 앞에 버티고 서 있는 것이다. 상감이 그를 불러 국사를 물었더니, 웬걸, 무엇을 묻거나 척척 대답을 잘하였다. 그것을 보자 장자가 말했다.
  "노나라에 유생이라 할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인데 왜 많다고 하셨습니까?"
[임성삼의 주(註); 요즈음의 학문의 추세에 대해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백리해는 벼슬 따위는 마음에 두지 않은 채 열심히 소를 쳐서 소가 살찌게 했다. 이러자 진나라 목공은 그 어짊을 알고 그의 천한 생업을 아랑곳없이 나라 정사를 맡기었다. ......
[임성삼의 주(註); 백리해는 중국 역사상 5 사람의 능력 있는 재상 중에 들 정도의 사람이다.]
 

22. 지북유(知北遊)
......
  동곽자가 장자에게 물었다.
  "이른바 도란 어디에 있는가?"
  "어디에나 있다."
  "그 소재를 밝혀 주게."
  "도르래나 개미에."
  "왜 그리 천한 곳에 있는가?"
  "들피나 피에."
  "왜 그리 더 천한 데에 있나?"
  "그럼 기와나 벽돌에 있지."
  "더 심하군!"
  "똥이나 오줌에 있지."  .....
[임성삼의 주(註); 이 주제가 불교로 넘어가서 선(禪)의 화두(話頭)가 된다. 19 번째 소개한 무문관을 참조하기 바란다. 불교의 스님들은 장자의 개념을 많이 받아들였다.]
   또 무위의 보금자리에 깃들면서 담담하고 고요하게, 그리고 맑고 깨끗하게, 그리고 만물과 섞이어 한가롭게 지내보지 않겠는가?
 
  대사마 집에 공장(工匠)이 있었는데 어려서부터 갈고리를 잘 만들었거늘, 나이 80에도 기술이 능란하여 조금의 실수도 없었다.
  대사마가 신기한 나머지 물었다.
  "자네 기술이 좋군! 무슨 비법이라도 있는가?"
  "소신에게는 마음으로 지켜온 바가 있나이다. 나이 스물부터 갈고리 만들기를 좋아했던 바, 다른 데는 눈도 뜨지 않고, 갈고리 외에는 눈여겨보지도 않았을 뿐입니다."
  그 영감은 그 기술을 쓰는데, 마음을 딴 데 두지 않고 다만 거기에 전심했으니, 이는 자연의 도를 힘입어 늙기까지 일한 소치인 것이다. 하물며 도를 자연에 조화시키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지 않을까?
[임성삼의 주(註); 자연스럽게 자기의 일에만 열중하고 사는 것을 최상의 가치의 하나로 생각한 것이 유교와 다른 점이다.]
 
 
잡편(雜扁)
23. 경상초
(庚桑楚; 일곱 번째 천간 경, 뽕나무 상, 모양 초)
.....
  어진 사람을 골라 정사를 맡기면, 백성은 서로 어질고자 중상하고,
슬기로운 사람을 골라 정사를 맡기면, 그 백성은 그 슬기를 배워 서로 도둑질한다.
.....
  노자가 말했다.
  "
양생의 도란 그 본성을 지켜 스스로 그 본성을 뺏기지 말아야 한다.
점 따위로 길흉을 묻지 말고,
오직 분수를 지킬지니,
지나간 일엔 미련을 갖지 말고,
다만 나에게 충실할 뿐 남의 칭찬이나 훼방에 아랑곳 없어할지어다.
그리고 오나가나 유연히 행동하며, 초연하며, 똑바로 나갈지어다. 
보다 중요한 것은 갓난애가 되는 일이다.
  갓난애란 날이 새도록 울어도 목이 쉬지 않으니, 그것은 희노의 정에 얽매이지 않은 순화의 극치인 것이다. ...
  갓난애는 어디를 가도 어디를 가는 줄 모르며, 가만히 있어도 아무런 할 바를 모른다. 다만 무심히 자연에 순응하면서, 자연을 따라 물결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양생의 법이다
.
[임성삼의 주(註); 점 따위를 치지 말라며 시작된 도교가 그 후 지금까지 2500 년 간 점을 쳐서 유지하고 있다는 것도 역설이다.]
   타고난 기품이 안정되면 자연의 지혜가 피어난다.
자연의 지혜가 피어나면, 사람은 자기의 진실한 모습을 나타내고,
만물은 각각 자기의 진실한 모습을 나타낸다.
   모든 사람은 자기 위주로 집착하면서, 남에게 자기의 절제를 받도록 목숨을 내걸기까지 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반짝거리는 것을 지혜롭다 하고, 우중충함을 어리석다 하고, 영달을 명예로 여기며, 가난을 치욕으로 여기고 있다. 이렇게 시비에 눈이 어두운 것이 요즘 사람의 습성이거늘, 이는 마치 매미와 비둘기가 9만 리 상공에 올라 남쪽 바다를 난다는 붕조(鵬鳥)를 비웃는 무지와 같은 것이다.
.....
 
분노해야 할 때 분노하지 않는 것은 자연의 본성을 어김과 같고,
행동해야 할 때 행동하지 않는 것은 억지로 무위를 가장했기에 역시 본성을 어긴 것이다. ...
[임성삼의 주(註); 무위 자연이란 그저 조용히 앉아 있는 것이 아니다. 분노할 때 분노하고, 행동해야 할 때 행동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24. 서무귀(徐無鬼)
.....
  한번은 장자가 어느 사람의 장례에 가다가 혜자의 묘 앞을 지나게 되었다. 거기서 발을 멈춘 장자는 제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초나라의 서울 영에 사는 사람 하나가 흰 찰흙을 코끝에 발랐는데 어찌나 얇은지 파리 날개 같았다. 그리고는 장석이라는 목수를 불러 코끝에 칠한 흰 흙을 긁게 했다. 장석은 바람이 일 정도로 도끼를 내리쳤으나 그는 눈을 감고 몸을 맡긴 채 아무 표정도 없었다. 과연 흰 흙은 말끔히 가시고 코에는 금 하나 가지 않았다. 

  뒷날 송나라의 군주 원군이 그 얘기를 듣고 하도 신기해서 장석을 불러왔다.
  '여보게, 내 코에 흰 흙칠을 하고 한번 해 보게!'
  장석은 '소신이 옛날엔 그렇게 긁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 상대가 죽은 지 오래입니다.'고 대답하였다.
  혜자가 죽은 뒤 나도 변론할 상대가 없어졌으니 누구와 말을 하겠는가?"
[임성삼의 주(註); 이 이야기와 절현(絶絃)이라는 이야기가 서로를 알아주는 친구를 이야기할 때 자주 인용된다.
  우정의 대명사인 관중과 포숙의 사귐인 관포지교(管鮑之交)도 많이 사용된다. 관중의 말에 "나를 나은 것은 부모요, 나를 아는 것은 포숙이다"는 흔히 인용되는 구절이다. 그 관중이 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관중이 병들자 군주 환공이 문병을 갔다.
  "그대가 중병을 앓으니, 죽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소. 만일 불행한 사태가 발생하면 나는 누구에게 국사를 맡겨야 하오?"
  관중이 물었다.
  "상감께서는 누구에게 맡기겠습니까?"
  "포숙아에게."
  "안됩니다.
  그의 성격은 너무 청렴결백하여 자기보다 못한 사람은 사귀려 하지 않고 또 남의 과실을 한번만 발견하더라도 두고두고 잊지 못합니다. 그런 사람에게 국사를 맡기면 위로는 너무 충직하여 임금께 반항하고, 아래로는 너무 청렴하여 백성들과 어긋날 것입니다. 결국 임금께 득죄할 날이 멀지 않습니다."
  "그러면 누구를?" ...
[임성삼의 주(註); 그 뒤에 이어받은 사람은 중요하지 않다.
  포숙은 자기의 재상 자리를 감옥에 있던 관중에게 양보하였었다. 관중은 그 자리에서 수십 년을 재상을 하고, 죽는 자리에서도 포숙에게 재상을 이어주지 않았다. 나라와 친구를 생각하는 마음에서였다.]
......
 
25. 칙양(則陽)
...
  거백옥은 예순 살이 되도록 예순 번이나 자연을 순응하여 변화를 가져왔다.[年六十 五十九化]
[임성삼의 주(註); 거백옥은 공자가 매우 감탄하는 사람이다. 그는 앞으로 향해 매 년 나아가는 사람이었다. 이런 자세를 유교에서는 대단히 좋게 생각한다. 나 개인적으로도 바람직한 삶의 태도라고 여기고 있다.]
  매 년마다 처음에는 옳다고 여겼으나 끝내는 틀렸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지금 옳다고 여기는 것도 쉰 아홉 번이나 틀렸던 남짓임을 알 수 있다.
[임성삼의 주(註); 이 말 자체는 사실이다. 그러나 사람이 완전하지 않은 만큼, 스스로를 늘 반성하는 태도를 이렇게 몰아붙이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26. 외물(外物)
...
  장자가 집이 가난하여 위나라의 문후에게 쌀을 빌러 갔다.
  문후가 말하였다.
  "그러게. 지방 세금이 곧 징수될 테니 그러면 3백 금을 빌려 드리지."
 장자는 갑자기 화를 내면서 말했다.
  "내가 어제 여기를 오는 도중, 누가 날 부르기에 돌아보니, 수레바퀴에 패인 자국 속에 붕어 한 마리가 있어 나를 부르는 것이었소. 그래서,
  '붕어야! 왜 그러니?'하였더니 이렇게 대답하였소.
  '나는 동해 용왕의 작은 신하입니다. 물이나 몇 말 부어 주셔서 저를 살려 주십시오.'
  '그러마. 나는 오, 월의 국왕을 찾아가는 길인데, 가거든 양자강 물을 터서 너를 맞게 하마!'라고 대답하자 붕어는 버럭 화를 내면서 말하기를,
  '나는 필요한 물을 잃어 거처할 곳이 없는 셈이오. 다만 몇 말을 물이 있으면 살 수 있는데, 엉뚱하게도 양자강 물을 말씀하시니, 차라리 나를 건어물전에 가서 찾는 것이 좋겠소'라고 하였소."
[임성삼의 주(註); 흔히 인용되는 이야기이다.]
 
  임(任)나라 왕자가 큰 낚시와 큰 밧줄을 만들고, 쉰 마리의 황소를 죽여 낚싯밥을 만든 뒤 회계산에 앉아 낚시를 멀리 동해에 던졌다. 이렇게 날마다 낚시를 드리운 지 어언 1 년이 되어도 고기는 한 마리도 잡히지 않았다.
  어느 날, 큰 고기가 물렸다. 미끼는 떼이고, 낚시바늘은 깊은 물 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그러더니 갑자기 솟아올라 지느러미를 퍼덕이니 흰 물결은 산처럼 솟고 바닷물은 뒤흔들 듯 출렁대고, 소리는 귀신의 외침 같아서 천리 밖 사람들까지 놀라게 했다.
  임(任)나라 왕자는 이 해신(海神)을 잡자 잘게 썰어서 포를 만들었는데, 절강 동쪽, 창오산 이북 주민은 모두 배부르게 먹었다고 한다. 그리고 뒷날 경박한 지혜에 말 많은 무리들이 그것이 감탄되어 서로 전했다고 한다.
  무릇 낚싯대와 가는 낚싯줄을 들고 조그마한 개울에 가서 붕어새끼들이나 지켜보는 낚싯군들이 큰 고기를 잡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이는 자질구레한 품행과 보잘 것 없는 학문을 자랑함으로써 높은 이름이나 얻고자 하는 쫄랑이 학자 따위가 큰 도에 나가려 함과 마찬가지다. 이 양쪽은 너무 크고 먼 차이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임나라 왕자 얘기를 들어보지도 못한 사람과는 천하를 경영할 수 없겠고, 이름이나 자랑하고 보잘것없는 행동이나 꾸미는 이에겐 아주 먼 이야기가 될 것이다.
[임성삼의 주(註); 전형적인 중국식 과장법에서 시작되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포부를 크게 하는 데는 도움이 된다.]
 
  송나라 원군이 밤중에 꿈을 꾸었는데, 꿈에 산발한 사람 하나가 샛문으로 들여다보면서 이렇게 지껄였다 한다.
  "나는 재로라는 못에서 왔는데, 지금 장강(長江; 양자강)의 신이 황하의 신에게 심부름을 시켜 가는 길에 여저라는 어부에게 붙잡혔다."
  원군은 꿈을 깨자 해몽을 시켰더니 이는 신령스런 거북이의 조화라고 풀이했다. 그는 당장 신하에게 물었다.
  "여저라는 어부가 있나?"
  "있습니다."
  "그럼 불러들여라!"
  이튿날 여저는 궁궐에 나타났다.
  "너는 요즘 무엇을 낚았느냐?"
  "예! 제 그물에 흰 거북이가 걸렸습니다. 둘레가 다섯 자나 되는 거북이입니다."
  "거북이를 짐에게 바쳐라."
  거북이를 조정에 갖다 놓자, 그놈을 살리고도, 죽이고도 싶었다. 그래서 다시 점을 쳤더니 그놈을 죽여서 점치는데 쓰면 좋다고 했다. 그래서 거북이를 잘라서 일흔 두 번이나 점을 쳤더니 번번이 길흉을 맞혔다.
  그러자 공자가 말했다.
  "그 거북의 능력은 꿈에 원군에게 나타날 정도로 신령스럽건만, 여저의 그물은 피할 수 없었고,
지혜는 일흔 두 번을 점쳐도 틀리지 않았건만 등가죽을 벗기는 불행을 피할 수 없었다.
이처럼 높은 지혜도 막힘이 있고 신령스런 능력도 미치지 못할 바가 있다. 비록 지상(至上)의 지혜가 있다 해도 만인의 꾀를 당할 수는 없다."
[임성삼의 주(註); 이 공자의 분석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 마지막 구절을 "모든 일을 다 이룰 수는 없다"로도 해석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조용히 안정하면 병을 요양할 수 있고,
 지압은 노화를 방지할 수 있고,
 심호흡은 심장의 격동을 쉬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풋내기들의 인위적인 수고로움이지, 결코 도를 체득한 사람이 할 일은 아니다.
[임성삼의 주(註); 다시 말하나 심호흡을 하여 도를 체득할 수 있다는 말은 없다. 그런데 노자와 장자의 제자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과거 2500 년 동안 심호흡을 하여 도를 체득하려고 무한한 노력을 하였다.]
   송나라의 동문에 이른바 효자가 있었는데 그 부모상을 당하여 하도 애통하였기에 몸이 수척해지자, 나라에서는 벼슬을 주어 칭송했다. 그러자 동리 사람들이 그 흉내를 내느라 억지로 애통하다가 몸을 상하여 죽음에 이른 자가 절반이나 되었다고 한다.
 

27. 우언(寓言)
 
현묘한 도는 언어를 떠난 것이다. 그러나 언어가 아니면 표현할 수 없으므로 부득이 다른 일을 빌어 그 뜻을 표현하는 방법을 우언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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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주[양자; 제자백가 중의 한 사람]가 남쪽 땅 패로 가는데, 이때 마침 노자는 서쪽으로 진나라를 가는 길이라, 둘이는 양나라 교외에서 만나게 되었다.
  둘이서 걷는데 갑자기 노자가 하늘을 바라보며 이렇게 탄식했다.
  "이전에 나는 자네를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만나 보니 틀렸군!"
  양주는 말없이 걸어 여관에 도착하더니만, 세수와 양치질을 끝내고 빗질까지 말끔히 끝냈다. 그리고 신을 뜰밖에 벗어 던지고 노자 앞에 무릎꿇어 공손히 말했다.
  "아까 선생님께 여쭙고 싶었습니다마는, 선생님께서 바삐 걸으시기에 그만두었습니다. 지금은 시간이 나니 제 결점을 말해주십시오."
  노자가 대답했다.
  "왜 그렇게 조급한데다가 잘난 체하는가? 그래 가지고 누구와 함께 세상을 살겠다는 말인가? 내가 도덕경에 '몹시 정결한 사람은 더러운 것처럼 보이고, 위대한 덕망가(德望家)는 모자란 것처럼 보인다'고 했지 않은가?"
  양주는 부끄러워 안색을 고치면서 말했다.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들겠습니다.
  양주가 처음 여관에 갔을 때엔 숙박하는 손님까지 반색하며 맞이했고, 그 주인은 방석을 들고, 안주인은 수건과 빗을 바치고, 손님들은 자리를 피하고, 불을 쬐던 손님까지도 무서워 아랫목을 비워 주었다.
  그러나 그가 돌아갈 무렵엔 손님들이 이제는 무섭지 않노라고 자리를 뺏을 정도로 양주는 모든 위세를 감추게 되었다."
[임성삼의 주(註); 한 마디로 배우는 사람도 있다. 혹은 한 마디로 배우지 못하면 영영 배우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28. 양왕(讓王; 사양할 양)
[처음에는 여러 임금이 왕위를 사양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 후에 다음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주나라 대왕단보가 빈이라는 고장에 살 때, 오랑캐가 쳐들어왔다.
대왕단보는 오랑캐에게 가죽과 비단을 봉납(捧納) 했으나 받지 않았고,
다시 개와 말을 봉납 했으나 받지 않았고,
끝으로 주옥을 주었으나 역시 받지 않았다.
결국 오랑캐들이 원하는 것은 영토였기 때문이다.

  대왕단보는 말했다.
  "남의 형과 같이 살면서 그 동생을 죽이거나, 남의 아버지와 같이 살면서 그 아들을 죽이는 것을 나로서는 차마 못할 짓이다.
  그러면 그대들이 여기서 살게! 우리 백성들로 말하면 내 신하가 되는 것이나 당신들 오랑캐의 신하가 되나 결국 마찬가지다.
 나는 일찍이,
  '본래 백성을 기르는 땅으로 백성을 해칠 수 없다'고 들었다."
  대왕단보는 그 길로 채찍을 지팡이로 삼고 자기가 살던 빈을 떠났다. 그런데 백성은 줄을 지어 따라와서, 대왕단보가 새로 자리잡은 기산 아래에는 결국 또 하나의 나라가 생기게 되었다.
  대왕단보는 정말 생명을 존중하는 사람이다. 생명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은 비록 부귀해질지라도 생활을 위해 생명을 훼손하지 않고, 비록 빈천할지라도 금전을 위해 육체를 학대하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 사람들로 고관대작을 지닌 사람은 행여 쫓겨날까 걱정하고, 이익을 보면 함부로 몸을 망치고 만다. 이렇게 경중(輕重)을 모르거늘, 어찌 미혹당하지 않을까?
[임성삼의 주(註); 여기의 주인공 대왕단보는 주나라의 시조이다. 몇 대 후의 자손이 전 중국을 평정하고 주나라를 세우게 된다.
 중국 사람들은 과장이 심하다고 하나, 이 대왕단보의 이야기는 여러 학파의 저술에 모두 나와 있으므로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중국 문화의 힘은 이렇게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을 인정하고 높이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열자는 가난하여 얼굴에 굶주린 기색이 보였다. 어느 나그네가 열자의 모습을 정나라의 재상인 자양에게 말했다.
  "열자란 사람은 도를 체득한 사람 같습니다. 대감의 나라에 살면서 그렇게 가난한 것을 보니, 대감께서는 아마 선비들을 돌보지 않는 모양이구료!"
  자양은 곧 관리를 시켜 쌀을 보냈으나, 열자는 절을 하면서 끝내 받지 않았다. 그 관리가 돌아가고 열자가 안으로 들어가자 그 아내는 가슴을 치면서 말했다.
  "소첩이 듣기엔 도사(道士)의 처자는 모두 즐겁게 산다고 했는데, 이토록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다니. 대감께서 기왕 뉘우치고 쌀을 보내 왔거늘, 그것도 거절한다면, 이런 가난이 결국 내 숙명이란 말입니까?"
  열자가 웃으면서 말했다.
  "대감은 자기 판단에 의해서 나를 안 것이 아니라 남의 권에 의해서 내게 쌀을 보내온 거야. 혹 나에게 죄를 씌우는 일이 있다면, 그것도 남의 말을 듣고 한 것일 테니, 내가 어떻게 그것을 받는단 말이요?"
  뒷날 과연 백성은 반란을 일으켜 자양을 죽이고 말았다.
[임성삼의 주(註); 열자는 하늘을 날 수 있다고 장자가 말했다. 그 정도의 사람도 자기 식구를 충분히 먹이지는 못하였다. 앞에 장자도 매우 가난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초나라 소왕오나라 군대에 쫓기어 다른 나라로 도망갈 때 설(說)이라는 백정소왕을 따르게 되었다.
[임성삼의 주(註); 이 상황은 사기 열전의 오자서전에 자세히 나온다.]
  전쟁이 끝나고 소왕이 귀국하여, 전란(戰亂) 중에 수행했던 사람에게 상(償)을 주게 되었다. 설(說)에 상(償)이 미치자 설을 이렇게 말했다.
  "상감께서 나라를 잃었을 때, 저도 양 백정이란 직업을 잃었고, 상감께서 나라를 광복하자, 저도 양 백정의 직업을 찾았는데 무슨 상을 주시겠단 말씀입니까?"
  왕은 단호히 요구했다.
  "받아야지!"
  설은 다시 말했다.
  "상감께서 나라를 뺏긴 것은 저의 죄는 아니므로 제가 그 벌을 받을 수 없습니다. 상감께서 나라를 다시 찾은 것은 저의 공이 아니므로 제가 그 상을 받을 수 없습니다."
  [왕이 계속 명령했으나, 설은 끝내 받지 않았다.]
[임성삼의 주(註); 전 세계의 역사를 살펴볼 때 한 나라의 국력이 융성해지는 시기에는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지키기 위해 재물을 사양하는 사람이 자주 나온다.]
 
  [공자의 제자] 원헌이 노나라에 살 제 어찌나 가난한지 한 장(丈; 3 m)쯤 되는 담으로 사방을 에워싼 작은 오두막집에 살았다. 지붕은 풀로 이고, 문은 쑥대로 엮었고, 대문 두주리는 뽕나무로 세웠고, 벽은 독으로 막아서 두 칸을 만들었고, 누더기를 쳐서 바람을 막았지만 위로는 비가 새고, 바닥으로는 물기가 번졌다. 그렇지만 그 속에서 두 부부는 단정히 앉아 거문고를 뜯으면서 서로 즐기고 있었다.
  어느 날 자공이 찾아왔다.
[임성삼의 주(註); 자공은 공자의 제자 중 가장 말을 잘 하였으며, 또한 장사를 잘하여 많은 재산을 모았다.]
  그는 큰 말이 이끄는 수레를 타고 감색 속옷에 하얀 겉옷을 걸쳤는데, 수레가 어찌나 큰지 작은 골목을 들어올 수 없었다.
  원헌은 가죽나무 껍질로 만든 갓을 쓰고, 뒤축이 떨어진 신을 끌면서, 지팡이를 짚은 채 대문에서 자공을 맞았다.
  "선생께서 어디가 불편하십니까?"
  자공의 질문이었다.
  "
내가 듣기엔 재물이 없는 것을 가난하다고 하고,
배우고도 배운 대로 행동 못하는 것을 병이라 하더군요.
나는 가난할지언정 병들지는 않았습니다."
  자공은 머뭇거리면서 얼굴을 붉혔다.
  그러자 원헌은 웃으면서 말했다.
  "무릇 세상의 명예를 좇아 행동하고, 친구를 모아 도당을 만들고, 자기의 명예를 위해 사람을 가르치고, 인의를 빙자하여 나쁜 짓을 하고, 가마나 말 등의 외물(外物)로 외면(外面)을 꾸미는 따위의 일은 나로서는 차마 할 수 없습니다."
[임성삼의 주(註); 공자의 중요한 제자 두 사람이 공자가 죽은 후 몇 년 후에 만난 장면이다. 그 말 잘하는 자공이 원헌 앞에서 대답한 말이 전하지 않는다.
 자공은 공자 묘에서 3 년상을 지내고, 다시 한 번 3 년을 지낸 사람이다. 자공도 원헌도 공자의 가르침을 벗어난 것이 아니다.]
 
  증자가 위나라에 살 때, 솜옷을 입은 지 오래라 안팎의 분별이 없었고, 안색은 굶은 지 오래라 부어 있었고, 손발은 일이 심한지라 더께가 났다.
  어느 때는 사흘이나 불을 피지 않았고, 10 년이나 옷을 지어 입지 않았고, 갓을 고쳐 쓰면 부스럭 갓끈이 끊어지고, 옷깃을 여미는 팔뚝이 불쑥 불거졌고, 신을 신으면 뒤꿈치가 상했다.
  거렇건만, 신을 끌고 태연하게도 상송[옛 노래]을 부르면, 그 소리 천지에 울려퍼지고, 마치 금석이 울리듯 찌렁찌렁 했다.
  천자(天子)도 그를 신하로 삼지 못했고, 제후도 그를 친구로 삼지 못했다.
  이렇게 이상을 기르는 사람은 육체를 잊을 수 있고, 육체를 기르는 사람은 물욕을 잊을 수 있고, 나아가서 도를 이룬 사람에겐 모든 마음을 홀홀히 잊은 채 유유히 살 수 있는 것이다.
[임성삼의 주(註); 증자는 공자의 학설을 가장 독실하게 실천한 제자이다. 논어에 있는 공자의 증자에 대한 평가는 "둔하다"는 것이다.]
......
 
29. 도척(盜 척)
  공자유하계는 친구였으며 하계의 동생은 유명한 도적인 도척이었다.
  도척은 그 아래 9000 명의 졸병을 거느리고 천하를 횡행(橫行)하면서 심지어 제후까지도 못 살게 했다.
[공자가 도척을 설득시키려고 찾아갔다가, 오히려 도척의 논리에 의해 크게 당하는 이야기이다. 통쾌한 면이 있는 글이다.]
 

30. 설검(說劍)
[조나라의 문왕이 칼싸움을 좋아하여 검객 3천 명을 모았다. 매일 검술만 구경하니 국력이 약해져 태자와 신하들이 의논한 결과 장자(莊子)에게 왕을 설득하도록 부탁한다. 은 검객만 만나므로 장자도 검객과 같이 꾸미고 나타났다.]
  이 물었다.
  "그대의 은 어느 정도로 적을 제압할 수 있는가?"
  "저의 칼은 열 걸음마다 사람 하나를 죽이고 천리를 가도 막을 사람이 없습니다."
[왕이 검객을 선발하여 장자와 시합할 5 명을 뽑았다. 그 선발전에서 60 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왕이 말했다.
  "오늘은 그대와 검객들로 하여금 승부를 가름하도록 하겠다."
  장자는 태연히 대답하였다.
  "기다린 지 오랩니다."
  "선생이 쓰실 목검의 길이는?"
  "저는 어떤 칼도 좋습니다. 단 저에겐 세 가지 칼이 있습니다. 어느 것을 쓸 것인가는 대왕의 뜻에 따르겠습니다만, 우선 칼의 효능을 말하고, 시범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왕은 궁금한 듯 물었다.
  "세 가지 칼을 설명해 보게!"
  "천자의 칼과, 제후의 칼, 그리고 서민의 칼이 있습니다."
  왕이 물었다.
  "천자의 칼이란 무엇인가?"
  "천자의 칼은 연나라의 석성을 칼끝으로 삼고, 제나라의 대산을 칼날로 삼고, 진나라와 위나라를 칼등으로 삼고, 주나라와 송나라를 칼자루로 삼아,
사방 오랑캐를 포섭하고, 사시(四時)의 변화에 순응하고, 다시 발해로써 가를 두르고, 상산으로 띠를 만들어, 오행(五行)으로 통제하며 형벌과 덕화(德化)로 창생을 다스리며, 음양의 기운으로 인도하여, 봄과 여름이면 자라게 하고, 가을과 겨울이면 거둡니다

  이 칼로 꼿꼿이 찌르면 앞에 적이 없고, 위로 치켜들면 하늘에 적이 없고, 아래로 내려치면 지상에 적이 없으니, 사방으로 휘두르면, 아무 데고 적이 없습니다.
  위로는 구름을 쪼개고, 아래로는 지축을 끊습니다. 그래서 이 칼을 한번 쓰면 ,천하의 제후를 바로잡고, 온 천하가 복종하니, 곧 천자의 칼입니다."
[임성삼의 주(註); 중국 웅변술의 극치를 여기에 옮긴 것이다.]
 
  왕은 멍하니 기운을 잃고 다시 물었다.
  "제후의 칼이란?"
  "제후의 칼이란
지혜와 용기 있는 사람으로 칼끝을 삼고,
청렴한 사람으로 칼날을 삼고,
어진 사람으로 칼등을 삼고,
충성스런 사람으로 칼 콧등을 삼고,
호걸스런 사람으로 칼자루를 삼습니다.
  이 칼은 꼿꼿이 앞을 치면, 역시 앞에 적이 없고 위를 치거나 아래를 치거나, 사방을 휘두르거나 모두 막을 사람이 없습니다.
 
  위로는 둥근 하늘을 본받아 일월(日月)성신(星辰)을 따르고, 아래론 모난 대지(大地)를 본받아 사시의 변화에 따르고, 안으로는 민심과 화합하여 사방을 편안케 합니다.
  그리고 이 칼을 한 번 쓰면, 뇌성벽력이 터지는 것 같아 경내(境內) 사람은 모두 조공을 바치면서 왕명을 좇을 지니, 이것이 바로 제후의 칼입니다."
   왕은 다시 물었다.
  "서민의 칼이란?"
  "서민의 칼이란
쑥대 같은 머리에 뾰죽한 귀밑머리와, 나직이 쓴 갓에 변변치 않은 갓끈을 매고, 거기다가 뒤가 없는 짧은 웃옷을 걸치고, 눈을 부릅뜬 채 난잡하게 말하는 그따위 검객들이 임금 앞에 서로 싸움질을 하면서
 
위로는 목을 베고, 아래로는 간과 폐를 쪼개는 정도를 서민의 칼이라고 말하니, 이는 닭싸움과 다를 바 없습니다. 어느 날 목숨이 끊어지면 나라 일에 쓸모가 없어집니다.
  지금 대왕께서 천자의 지위에 계시면서 천한 서민의 칼을 즐기시니 저는 적이 대왕을 위해 부끄러워하나이다."

  말이 끝나자, 왕은 장자를 전상(殿上)으로 청했다. 그리고 요리사가 식사를 바쳐도 왕은 세 번이나 식탁을 돌면서, 미처 식사를 못했다. 그러자 장자가 말했다.
  "대왕께서는 진정하십시오! 칼 얘기는 이미 끝났습니다."
  문왕은 그로부터 석 달 동안 외출하지 않으니, 검사들은 박대함을 분개하고 모두 자살하였다.
 

31. 어부(漁夫)
 

32. 열어구(列禦寇; 벌릴열, 막을 어, 도둑 구)
......
  나라의 조상이라는 사람이 그 나라 왕의 심부름으로 나라에 갔는데, 떠날 때에는 몇 대의 마치였는데, 진왕의 환심을 사서, 올 때는 마차가 백 대로 늘어났다
  나라에 돌아오자 장자를 만나 이번 여행을 자랑했다.
  "누추한 골목에 살며 가난한 살림이라 짚신이나 삼아 신고, 목은 야위고, 누렇게 얼굴이 말라빠지는 일은 자신이 없지만, 만승의 제왕을 설득하여 마차를 백 대나 얻는 일은 나의 장점이랄 수 있다."
  장자가 대답했다.
  "진왕이 병에 걸려 의사를 불렀다더군. 종기를 터뜨리고 고름을 짜낸 사람에겐 차 한 대를 주었고, 치질을 빨아 준 사람에겐 다섯 대를 주었다더군. 그런데 치료할 곳이 더러울수록 차를 많이 얻을 수 있다는데, 자네는 왕의 치질을 고쳐 준 게 아니고는 왜 그렇게 많은 마차를 얻어 왔다는 말인가? 에끼! 더러운 사람아! 빨리 사라지게!"
[임성삼의 주(註); 흔히 인용되는 이야기이나, 장자의 입이 너무 걸은 것은 사실이다.]
 
  어느 이 사신을 보내 장자를 초빙했더니, 장자가 그 사신에게 대답했다.
  "그대는 제물로 끌려가는 소를 보았는가? 수놓은 옷을 입히고, 콩과 꼴을 먹여 대우하지만, 끌려서 종묘로 갈 때엔 그 때서라야 못난 송아지가 되겠다고 발버둥해도 되겠는가?"
 

33. 천하(天下)
[묵자 학파에 대한 비평이 있다.]
...
[묵자에 대한 비평이 끝나자, 궤변가들에 대한 비판이 있다.]
  혜시의 학문은 넓고, 그 장서는 다섯 수레가 되었다. ... 

  "오늘 월나라에 가지만, 이미 어제 월나라에 도착했다."
   혜시는 이런 궤변으로 스스로 세계를 달관하듯이 의기양양했고, 나아가서 다른 변론가들을 설득했으니, 천하의 변론가들은 즐겨 호응했다. 그 중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알에는 털이 있다.
  닭에는 발이 셋이 있다.
  불은 뜨겁지 않다.
  산이 입에서 나온다.
  수레바퀴는 땅에 닿지 않는다. ...
  나는 새의 그림자는 움직이지 않는다.
  아무리 날쌘 화살이라도 가지도 않고 멈추지도 않는 시간이 있다.
  한 자의 채찍을 날마다 절반을 자를지라도 영구히 존재한다
.
   당시의 이런 궤변으로 혜시와 쟁론을 벌였다.
[임성삼의 주(註); 거의 같은 시기에 그리스에서는 제논의 역설이라는 것이 있었다. 위의 마지막 세 가지 명제와 같은 것이다. 거북이와 토끼가 경주를 할 때 거북이가 조금 앞에서 출발하면 토끼가 거북이 있는 위치에 갈 시간 동안 거북이 조금 더 전진한다. 그 거리를 토끼가 가는 동안 거북은 또 어느 정도는 전진한다. 그 결과 토끼는 거북을 절대로 따라잡지 못한다. 이 논리를 더 전개하면 날아가는 화살은 멈춰있는 것이다. 여하튼 동양과 서양에서 거의 동시에 같은 논리가 나타났다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참고; 1 mol의 분자로 구성되어 있는 가는 채찍을 하루에 절반씩 나누면 77 일째는 하나의 분자를 둘로 나누어야 한다.]

 
[임성삼의 이야기; 장자에서 주장하는 것은 무위자연(無爲自然)이다.
 사람을 강제하지 않고 자연스러움을 주장하는 노장사상의 글이 유가(儒家)의 논어, 맹자나 그 이외의 글에 비해 매우 어렵다.
 흔히 사용하지 않는 어려운 단어를 많이 사용하는 것은 물론, 문장도 어렵고, 개념도 쉽지 않은 부분이 많다. 나의 한문 실력으로 맹자까지는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으나 장자는 불가능하다.
 단순하게 타고난 성품을 그대로 유지하자는 논리가 이렇게 어렵고, 현란하게 표현된다는 것도 역설적이다.]
 아래에 장자에 나오는 좋은 말들을 조금 모아 보았다.
 水之積也不厚, 則負大舟也無力 수지적야불후, 즉부대주야무력         
 물이 깊지 않으면 큰 배를 띄울 수가 없다.
[사람이 학문과 수양을 충분히 쌓지 않으면 한 임무를 수행할 수 없다.] 내편 소요편
 適千里者, 三月聚糧  적천리자, 삼월취량
 천 리길을 떠나는 사람은 삼 개월 동안 식량을 모아야 한다.
[긴 인생을 살기 위해 수양하는 기간을 충분히 가져야 한다.] 내편 소요편
 猶然笑之  유연소지
 유연(悠然)히 이를 웃었다.
[송영자라는 사람은 달관한 사람이어서 세상사람들이 약간 성공하거나, 혹은 어떤 관직에 앉거나 하여 기뻐하는 것을 보아도 그저 초연히 웃을 뿐이었다.] 내편 소요편
 擧世而譽之, 而不加歡, 擧世而非之, 而不加沮  거세이예지, 이불가환, 거세이비지, 이불가저
 세상 사람이 전부 자기를 칭찬한다고 해서 더 근면해지지 않으며,
 세상 사람이 모두 자기를 욕한다고 해서 기가 꺾이지도 않는다
.  내편 소요편
 至人無己  지인무기
 정말로 훌륭한 사람에게는 <나>라는 것이 없다.  내편 소요편
 神人無功  신인무공
 신의 경지에 달한 사람은 아무리 훌륭한 일을 했어도 자기가 그런 일을 하였다는 흔적을 남기지 않으므로 공(功)이라는 것이 없다.  내편 소요편
 聖人無功  성인무공
 성인은 공적을 쌓았어도 이에 따르는 명예를 구하는 일이 없으므로 자연히 공적이 사람들의 머리에 남지 않는다.  내편 소요편
 
樂出虛  악출허
 음악소리는 모두 비어 있는 곳에서 울려 나온다.
[인간의 마음도 겸허하게 비어 있지 않으면 참된 행동이 나올 수 없다.]  내편 제물편
道通爲一  도통위일
 모든 도는 통하여 하나가 된다.  내편 제물론
 朝三而暮四 조삼이모사
 저공이 원숭이를 기르고 있었다. 그가 상수리 열매를 원숭이에게 나누어 주며
"아침에는 세 개, 저녁에는 네 개를 주겠다."고 하자 원숭이들이 모두 화를 내었다. 그래서,
"아침에는 네 개, 저녁에는 세 개를 주겠다."고 했더니 원숭이들이 모두 좋아했다.
[모든 일을 당장 눈 앞의 이익으로만 판단하는 어리석음을 사람들이 모두 가지고 있다.]  내편 제물론
 大辯不言  대변불언
 참된 웅변은 말이 없는 것이다.
[침묵은 금이다.]  내편 제물론
 大仁不仁  대인불인
 참으로 어진 사람은 어짊을 베푼 흔적은 남에게 보이지 않는다.  내편 제물론
 夢之中又占其夢  몽지중우점기몽
 꿈 속에서 지금 꾼 꿈의 길흉을 점치고 있다.  내편 제물론
 莊周夢爲胡蝶  장주몽위호접
 장자가 꿈 속에서 나비가 되었다.  내편 제물론
 吾生也有涯, 而知也無涯  오생야유애, 이지야무애
 나의 삶에는 끝이 있으나, 지식에는 끝이 없다.
[Life is short, art is long.]  내편 양생주
 爲善無近名  위선무근명
 착한 일을 행하되, 명예를 피하라.  내편 양생주
 治國去之, 難國就之  치국거지, 난국취지
 잘 다스려지는 나라에서는 각별히 해야 할 일이 없으므로 그 나라를 떠나도록 하고,
 혼란한 나라에 가서 힘껏 일을 해야 한다.
(공자의 말이라고 인용) 내편 인간세
 醫門多疾  의문다질
 병원에는 환자가 많다.
[의사가 환자 많은 곳을 찾아 가듯이,
지사(志士)는 혼란한 나라를 찾아가서 역량껏 일을 해야 한다.] 내편 인간세
 德蕩乎名  덕탕호명
 덕은 명예욕으로 인해 소멸된다.  내편 인간세
 內直而外曲 내직이외곡
 마음은 곧게 지니고, 외면은 공손히 한다.  내편 인간세
 無聽之以耳, 而聽之以心  무청지이이, 이청지이심
 모든 것을 귀로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들어라  내편 인간세
 虛室生白  허실생백
 아무 것도 없는 방에 있으면, 방의 암흑 속에서도 흰 것이 보인다.
[마음을 깨끗이 다듬으면 세상의 일을 저절로 명확히 알 수 있다.] 내편 인간세
 無勸成  무권성
 일을 이루는 것을 강제로 하지 말라.  내편 인간세
 以其能苦其生  이기능고기생
 그 능력으로 인하여 오히려 괴로운 삶을 산다.  내편 인간세
 立不敎, 坐不議  입불교, 좌불의
 서서 가르치지 않고, 앉아서 의논하지 않는다.
[진정한 가르침은 가르침이 없는 중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내편 덕충부
 人莫鑑於流水, 而鑑於止水. 唯止能止衆止.  인막감어유수, 이감어지수. 유지능지중지.
 사람은 흐르는 물에 자기의 얼굴을 비추어 보지 않는다.
 정지된 물을 거울로 삼는다.
 오직 잔잔한 것만이 세상의 참모습을 비출 수 있다. 내편 덕충부
  鑑明則塵垢不止  감명즉진구부지
 거울이 맑으면 먼지가 끼지 않는다.
[깨끗한 마음의 사람에게는 나쁜 생각이 깃들지 않는다.] 내편 덕충부
 有眞人, 而後有眞知  유진인, 이후유진지
 참된 사람이 있은 후에야
 참된 지식이 생겨난다
.  내편 대종사
[논어에 다음의 말이 거의 같은 뜻이다.
 人能弘道 非道弘人 인능홍도 비도홍인,
사람이 도를 넓히는 것이지 도가 사람을 넓혀주는 것이 아니다.]
 古之眞人 不知悅生 不知惡死  고지진인 부지열생 부지오사
 옛 진인은 산다는 것을 기뻐하지 않았고
 죽음을 싫어할 줄도 몰랐다.  내편 대종사
 自適其適  자적기적
 스스로의 마음에 적합한 것을 구한다.  내편 대종사
 與天爲徒  여천위도
 하늘과 한 무리가 된다.
[자연과 동화하여 일체가 된다.] 내편 대종사
 藏天下於天下  장천하어천하
 천하를 천하 속에 감추다.  내편 대종사
 莫逆於心  막역어심
 마음에 거역하는 일이 없다.  내편 대종사
[상반되는 점이 없는 친구를 "막역(莫逆)한 친구"라고 부른다.]
 좌망(坐忘)
 앉은 채 모든 것을 잊는다.  내편 대종사
 無爲謀府  무위모부
 모략의 중심 인물이 되지 말아라  내편 응제왕
 不將不逆, 應而不藏  부장불역, 응이부장
 장래의 일을 걱정하지 않고, 과거에 매달리지 않으며,
 시기에 따라 행동하되, 마음에 두지 않는다
.  내편 응제왕
 臧與穀, 二人相與牧羊, 而俱亡其羊  장여곡, 이인상여목양, 이구망기양
 장이라는 사람과 곡이라는 사람 둘이
각기 양을 지키고 있다가 다 같이 그 양을 잃어버렸다. 
[한 사람은 책을 읽다가, 한 사람은 노름을 하다가 양을 잃었으나 결과는 동일하다.]  외편 병모
 
爲大盜積  위대도적
 큰 도적을 위해 재물을 쌓아 놓는다.  외편 거협
 脣亡齒寒 순망치한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다
.  외편 거협
[삼국지에서도 몇 번 인용되는 구절이다.]
 聖人生而大盜起  성인생이대도기
 성인이 탄생하면 큰 도둑이 생긴다.
[성인의 가르침을 악용해서 도둑이 사용한다.]  외편 거협
 在宥天下  재유천하
 천하를 있는 그대로 존재하게 한다.
[이것이 최상의 정책이다.]  외편 재유
 行於萬物者道也  행어만물자도야
 만물에 빠짐없이 골고루 행해지는 것이 도(道)이다.  외편 천지
 所貴道者書也  소귀도자서야
 도를 배우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책이다.  외편 천도
 愚故道  우고도
  어리석기 때문에 도에 일치한다.  외편 천운
  不日浴而白  고불일욕이백
 백조는 매일 목욕을 하지 않아도 희다.  외편 천운
 
賢士尙志  현사상지
 현명한 선비는 뜻을 중히 여긴다.  외편 각의
 大人無己  대인무기
 큰 사람에게는 자기라는 것이 없다.  외편 추수
 曳尾於塗中乎  예미어도중호
 꼬리를 흙탕 속에 끌고 다니겠다
[장자에게 나라의 정치를 의뢰했을 때 장자가 한 말.]  외편 추수
 至樂無樂 至譽無譽  지락무락 지예무예
 진정한 즐거움에는 즐거움이 없고, 진정한 명예에는 명예가 없다. 외편 지락
 從水之道而不爲私焉  종수지도이불위사언
 물의 흐름에 따를 뿐, 내 의사를 개입시키지 않는다.  외편 달생
 不材得終其天年 부재득종기천년
 쓸모없는 나무는 하늘이 준 수명을 다한다.  외편 산목
 臣有守也  신유수야
 나에게는 굳게 지키는 바가 있습니다.  외편 비북유
 學者學其所不能學也  학자학기소불능학야
 학자는 자신이 도저히 배울 수 없는 것도 배우려 한다.  잡편 경상초
 
無以巧勝人,  무이교승인,
無以謀勝人,  무이모승인,
無以戰勝人.  무이전승인.
 교묘함으로 남을 이기려 하지 말고,
 모략으로 남을 이기려 하지 말고,
 싸움으로 남을 이기려 하지 말라.
  잡편 서무귀
 
聞不言之言  문불언지언
 입 밖에 내지 않은 말을 듣는다.  잡편 서무귀
 爲大不足以爲大  위대부족이위대
 큰 일이라고 여기면, 큰 일을 할 수 없다.  잡편 서무귀
 遽伯玉, 行六十而六十化
 
거백옥은 60 세에 60 번 변했다
.  잡편 칙양
 철부지급(轍 之急)
 수레 바퀴 자국의 웅덩이에 있는 붕어의 급함.  잡편 외물
 得漁而忘筌  득어이망전
 물고기를 잡으면 통발을 잊는다.  잡편 외물
 憲貧也, 非病也.  헌빈야, 비병야.
 저 "헌"은 가난하나 병들지는 않았습니다.  잡편 양왕
[원헌이 자공에게 한 말]
 窮亦樂, 通亦樂  궁역락, 통역락
 (옛 성현의 도에 도달한 사람은) 곤궁하면 곤궁한 것을 즐기고, 형통하면 그 형통함을 또한 즐긴다.  잡편 양왕
天子之劍  천자지검
 천자의 검  잡편 설검
 巧者勞, 而知者憂  교자로, 이지자우
 재주가 뛰어난 사람은 노고가 많고, 지식이 있는 사람은 걱정이 많다.  잡편 열어구
 知而不言, 所以之天  지이불언, 소이지천
 알고도 말하지 않음은 하늘의 경지로 들어가는 최선의 방법이다.  잡편 열어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