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의경의 세설신어(世說新語)                 
 
출판사; 살림, 상권(p 374, 15000 원)과 중권(p 471, 13000 원), 1997
 
 이 세설신어는 인물에 대한 평가가 대부분이다.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인물에 대한 평가는 어떤 사람이 가지고 있는 단점이나 약점을 말하기 쉽다. 이런 단점을 주로하는 평가가 그 사람이 단점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주는 면이 있으나, 실제로는 의미 없는 경우가 많으며 그 사회의 분위기를 중상모략이 난무하는 방향으로 이끌기 쉽다. 이 책에서는 거의 모든 인물 평가가 그 사람의 좋은 점에 대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통속적인 위인전이 범할 수 있는 오류를 벗어나고 있는 것은 책을 쓴 사람과 그 시대가 가진 높은 정신적인 능력과 고아(高雅)한 분위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다루고 있는 시대는 후한(後漢) 말기 소설 삼국지의 시대부터 사마중달 아들이 세운 진나라, 그리고 북방 민족에게 쫓기어 양자강 유역에 옮아간 동진(東晋)의 시기까지이다.
 
 그러므로 방통과 조조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사마중달은 70 살이 넘어 쿠데타를 일으켜 조조가 세운 위나라의 실권을 잡는다. 그러나 황제의 자리는 빼앗지 않고 쿠데타 1 년 후에 죽는다. 그의 아들이 진(晋)나라를 세워 삼국을 통일한다.  그 진나라가 북쪽의 오랑캐에 쫓기어 양자강 유역에서 다시 나라를 세운 뒤(동진)까지의 인물들에 대한 평가가 주를 이룬다.
 
 동진시대는 인간의 능력을 존중하던 시기였다. 그러므로 인간의 능력을 알기 위한 모든 노력을 다하였으므로 어떤 능력이 인간으로서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한 여러 고찰이 있다.
 
 짧은 문장에 알리고 싶은 말을 함축시킨 것이 이 책의 특징이다.
 
 잘 알려져 있지 않으므로 책에 대한 설명을 백과사전에서 살펴 본다.
세설신어    世說新語             COPYRIGHT (C)한국브리태니커회사, 1999
 중국 후한에서 420년의 동진(東晉)시대에 걸쳐 사대부의 일화를 기록한 책.
 총 1,000여 항목 36편(篇)으로 구성되어 있다. 동진과 관련된 기록이 대부분이다. 이 책은 남조 송나라(420~479) 무제(武帝) 때 유의경(劉義慶:403~444)이 편찬했다.
[임성삼의 주; 이 송나라는 당나라 다음의 조광윤이 세운 송나라가 아니다. 사마중달 아들의 진나라가 망한 다음 남쪽에서 일어난 지방 정권인 송나라이다.]
 체제는 〈덕행〉·〈언어〉·〈정사 政事〉·〈문학〉 등의 36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은 사대부의 생활과 언행을 기록한 것이 대부분인데, 강한 개성, 고전적 교양, 해학 등이 들어 있다. 사상적으로는 유가·노장사상·불교가 융합되어 있으며, 예리한 언어와 풍부한 기지를 갖춘 청담(淸談) 형식이 바탕을 이룬다. 남조 양(梁)나라의 유효표(劉孝標:462~521)가 현존하지 않는 귀중한 자료를 인용하여 주(注)를 달아 문헌학상 매우 중요하다.
[임성삼의 주; 남조 양나라는 달마대사가 중국에 도착했을 때 처음 도착한 나라이다. 양나라의 왕인 무제가 스스로 많은 절을 세우고 불교를 위해 여러 일을 했는 데 자기의 공덕이 어느 정도냐고 묻자 달마대스는 "무 無"라는 한 마디를 하였다.]
〈세설신어〉는 중국학술사에서도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으며 후대 중국소설의 발전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백과사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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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의경의
세설신어   世說新語 (約77,400字)
** 底本 : 劉孝標 注 <<世說新語>>(上海書店 諸子集成本)
 
 
德行第一     덕행 제 1 (편)
 
1-1/1 陳仲擧言爲士則, 行爲世範, 登車攬 , 有澄淸天下之志.
        진중거 언위사칙,  행위세범.
진중거의 말은 선비의 준칙이 되었으며, 행동은 세상의 규범이 되었다.
수레에 올라 말고삐를 잡고서는 천하를 깨끗이하려는 뜻이 보였다.
[임성삼의 주(註); 앞에서 소개한 <중용>에 '말은 선비의 준칙이 되며, 행동은 세상의 규범이 된다'는 말이 있다.
역사상 진중거 같이 이 기준에 해당하는 사람이 있었던 것은 좋은 일이다. 거의 동시대의 사람의 평이고, 이 책의 첫 머리에 나오는 이야기이니 진중거라는 분이 확실히 이런 분이었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지금도 이런 분이 우리 주위에 있을 것도 믿는다. 그런 사람이 교육부 장관이 되면 참 좋을 것이다.]
 
[임성삼의 주(註); 여기에 언급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역사책에 나오지 않는다. 이름을 굳이 외우려고 생각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상당히 많은 사람이 거명되며, 몇몇은 여러번 반복된다. 반복되는 중요한 사람에 대하여는 그 때에 언급하겠다.]
 
1-2/1 周子居常云:[吾時月不見黃叔度, 則鄙吝之心已復生矣.]
주자거가 늘 말했다.
"내가 잠시라도 황숙도를 만나보지 못하면 비루하고 인색한 마음이 다시 생겨난다."
[임성삼의 주(註); 우리가 친구를 사귀는 진정한 즐거움은 이렇게 나의 마음이 친구에 의해 스스로 바르게 되는 것에 있다. 역으로 어떤 사람을 만나고 나면 늘 내가 비루해지고 인색해지는 것을 느낀다면 그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1-3/1 郭林宗至汝南造袁奉高, 車不停軌, 鸞不輟 ;
곽림종이 여남에서 원봉고를 방문할 때는
차 바퀴가 멈추지 않고, 말방울 소리가 멍에에서 그치지 않을 만큼 잠깐만 들렀다.
詣黃叔度, 乃彌日信宿.
황숙도를 방문해서는 하루를 다 보내고 다음날까지 머물렀다.
1-3/2 人問其故? 林宗曰:[叔度汪汪, 如萬頃之陂;
사람들이 그 까닭을 묻자 곽림종이 대답하기를
"숙도의 넓고 넓음은 만 이랑이나 되는 못과 같다.
1-3/3 澄之不淸, 擾之不濁, 其器深廣, 難測量也.]
         징지불청, 요지불탁, 기기심광, 난측량야
[이를] 맑게 하려 해도 깨끗해지지 않으며, 흔들어도 흐려지지 않으니,
그의 기량은 깊고 넓어서 측량하기 어렵다."
[임성삼의 주(註); 그저 사람에 대한 이런 평가를 읽는 것 만이라도 마음이 시원해지지 않는가?
이런 사람을 만나면 깊게 사귀려고 노력해야 한다.]
 
1-4/1 李元禮 風格秀整, 高自標持, 欲以天下名敎是非爲己任.
이원례는
풍격이 수려하고 엄정했으며,
고상하게 스스로 높은 긍지를 지니고 있어서,
세상에 명분의 가르침을 펴고
시비를 바로잡는 것을 자기의 임무로 삼으려 했다.
1-4/2 後進之士, 有升其堂者, 皆以爲[登龍門].
후배된 선비로서 그의 당(堂)에 올라 수업을 받은 자는 모두 등용문(登龍門)에 올랐다고 생각했다.
[임성삼의 주(註); 사람들 중에 모범이 되는 성격을 위와 같이 정의하였다. 고상한 긍지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서의 시비를 바로 잡는 것은 어떤 것이 정의(正義)인가를 남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등용문(登龍門); 중국의 장안(현재의 서안)에서 900리 떨어진 곳에 용문(龍門)이라는 곳이 있다. 물이 매우 가파르게 떨어져 물고기가 거슬러 올라갈 수 없으나, 올라가기만 하면 용(龍)이 된다고 한다. 흔히 과거에 급제하는 것을 말한다.
내가 알기로는 등용문이라는 말이 가장 먼저 사용된 것이 이 문장이다.]
 
1-5/1 李元禮嘗歎荀淑 鐘皓曰;[荀君淸識難尙, 鐘君至德可師.]
이원례가 순숙과 종호에 대해 말했다.
"순숙의 맑은 식견은 그 위에 다른 것을 더하기 어려우며,
종호의 지극한 덕은 스승이 될 만하다."
[임성삼의 주(註); 같은 시대 사람들의 좋은 성품에 대해 서로 칭찬을 보내는 것이 우리가 이 책을 읽는 기쁨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남의 좋은 성품에 대해서는 칭찬하고, 좋지 않은 성격에 대해서는 말해서는 안된다.]
 
[임성삼의 이야기; 위의 이야기를 보면서 이 시대가 평온하고, 사람들이 순박하였던 좋은 시절이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이 시대만큼 어지러운 때가 없었다.
 
 조조의 자손들은 서로를 의심하여 황제의 형제나 친척들에게 권력을 주지 않았다. 이것이 사마중달이 쿠데타를 손쉽게 이룬 원인이었다. 그러므로 사마중달의 손자들은 모두 왕으로 임명되어 군사적인 힘을 가졌다. 다른 성을 가진 사람들이 쿠데타를 할 수 없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이 손자와 증손자들이 자기의 군대를 동원하여 서로 싸운 때가 위의 사람들이 살던 시기였다. 8 명의 왕이 차례로 반란을 일으키고 살해당해 사마중달의 자손이 거의 모두 없어졌다.
 
 이런 난리 중에 상당히 많은 선비들이 사형당하였다. 이렇게 혼란한 세상에 맑고, 밝게  살자는 운동이 일어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그 중 한 부류가 흔히 말하는 죽림칠현(竹林七賢)이다.
  그 시대에도 혼란한 세상에서 나의 눈 앞의 이익만을 원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이 권력투쟁에 참여하여 계속 죽어가는 것을 본 선비들이 정화운동을 일으킨 것이다. 깨끗하고 맑은 사람이 대접을 받을 수 있도록 모든 선비들이 배려하기 시작한 결과가 이 책이다.]
 
1-8/1 陳元方子長文有英才, 與季方子孝先, 各論其父功德, 爭之不能決, 咨於太丘.
  진원방의 아들 장문이 영특한 재주가 있었다. [진원방의 동생인] 진계방의 아들 효선과 더불어 각기 자기 아버지의 공덕을 논하며 다투었으나 결론이 나지 않아 할아버지인 태구(진식)에게 물었다.
[임성삼의 주(註); 사촌끼리 서로 자기 아버지가 낫다고 주장하다가 할아버지에게 판단을 구했다.]
1-8/2 太丘曰:[元方難爲兄, 季方難爲弟.]
할아버지가 말했다. "큰아들 원방은 형이 되기 어려우며 막내아들 계방은 동생되기 어렵다."
[임성삼의 주(註); 이것이 난형난제(難兄難弟)의 원전(原典)이다. 서로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때 사용한다. 한 집안에서 사촌끼리 싸우다 생겨난 보잘 것 없는 이야기이나, 대상이 된 형제가 뛰어난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었던 것 같다. 진식은 제갈공명의 다음 세대쯤 될 것이다.]
 
1-10/1 華歆遇子弟甚整, 雖閒室之內, 嚴若朝典. 陳元方兄弟恣柔愛之道.
화흠은 자식 대하기를 매우 엄정하게 하여 비록 한가로이 집안에 있을 때라도 엄격함이 마치 조정의 의식과 같았다.
그러나 진원방 형제는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방법으로 자식들을 방임했다.
1-10/2 而二門之裏, 兩不失雍熙之軌焉.
이 두 집안 가운데 어느 쪽도 화기애애한 법도를 잃지 않았다.
[임성삼의 주(註); 화흠은 앞으로 자주 나온다. 화흠, 관녕, 왕망이 동일 세대이다. 제갈공명이 삼국지에서 세 번째 기산 출진(? 확인 바람)때 왕망과 설전을 벌여 말로 늙은 왕망을 죽게 했으니 제갈공명보다 20 년 쯤 앞세대일 것이다.
  중국식 사고방식의 장점 중의 하나는 흑백논리가 지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식을 교육시키는 방법상 엄격함과 부드러움을 모두 인정한 것이다.]
 
1-11/1 管寧 華歆共園中鋤菜, 見地有片金, 管揮鋤與瓦石不異, 華捉而擲去之.
관녕과 화흠이 함께 채소밭을 호미질하다 땅에 금조각이 있는 것을 보았다.
관녕은 호미질을 계속하면서 금조각을 기와나 돌과 다름없이 여겼는데,
화흠은 그것을 주워서 던져 버렸다.
1-11/2 又嘗同席讀書, 有乘軒冕過門者, 寧讀書如故, 歆廢書出看.
한번은 둘이 자리를 같이 하고 책을 읽고 있었는데,
면류관을 쓰고 마차를 타고 문 앞을 지나가는 사람이 있었다.
관녕은 변함없이 책을 읽었는데, 화흠은 책을 덮고 나가서 구경하였다.
1-11/3 寧割席分坐曰:[子非吾友也!]
       관녕 할석분좌 왈
관녕은 자리를 갈라 따로 않고서 말하였다. "그대는 내 친구가 아니네!"
[임성삼의 주(註); 할석절교(割席絶交)의 원전(原典)이다.
실제로 관녕이 칼을 꺼내어 자리를 나눈 것이다. 나는 관녕이 잘 판단하였다고 생각한다.]
 
[책의 주석;
관녕은 춘추시대 제나라 재상 관중[포숙과의 금란지교]의 후손이다.
"위략"이라는 책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관녕은 젊어서부터 마음이 욕심없고 고요하며, 항상 화흠이 벼슬하고자 하는 뜻을 비웃었다.
화흠이 사도(司徒; 삼공, 즉 국가의 최고 3 인자 중의 하나)가 되었을 때, 관녕에게 자기의 관직을 양보하겠다고 상주(上奏)하였다는 이야기를 듣자 웃으며 말하였다.
"화흠은 본래 늙은 벼슬아치가 되고자 했기 때문에 그까짓 사도 벼슬을 영광스럽게 여기고 있다."
 
임성삼의 주(註); 화흠은 관녕에게서 할석절교를 당하고도 원수로 여기지 않고 자기의 높은 벼슬을 양보하였다. 역시 보통 사람은 아니다.]
 
1-12/1 王朗每以識度推華歆.
왕랑은 매번 식견과 도량으로 화흠을 추앙했다.
[임성삼의 주(註); 관녕이 할석절교한 화흠을...]
歆 日, 嘗集子姪燕飮, 王亦學之.
1-12/2 有人向張華說此事, 張曰:[王之學華, 皆是形骸之外, 去之所以更遠.]
 
1-13/1 華歆 王朗俱乘船避難, 有一人欲依附, 歆輒難之.
화흠과 왕랑이 함께 배를 타고 난리를 피하던 중, 어떤 사람이 함께타고 가기를 원하자 화흠이 난색을 표했다.
1-13/2 朗曰:[幸尙寬, 何爲不可?] 後賊追至, 王欲捨所 人.
왕랑이 말하기를 "다행히 빈 자리가 있는데 어찌 안된단 말이오?"
나중에 도적이 추격해오자 왕랑은 도리어 자기가 태워준 사람을 버리고자 했다.
1-13/3 歆曰:[本所以疑, 正爲此耳; 旣已納其自託, 寧可以急相棄邪?]
화흠이 말하기를 "내가 애당초 염려했던 것이 이것이오. 이미 자기에게 의탁한 사람을 받아들인 이상, 상황이 급박하다고 어찌 다시 버릴수가 있겠소?"
1-13/4 遂 拯如初. 世以此定華王之優劣.
마침네 처음대로 구해 주었다. 세상 사람들은 이것으로 화흠과 왕망의 우열을 정했다.
[임성삼의 주(註);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이다. 그렇다고 화흠이 처음에 거절한 사실이 타당화되는가?]
 
1-15/1 晉文王稱阮嗣宗至愼; 每與之言, 言皆玄遠, 未嘗臧否人物.
진의 문왕[사마소; 사마중달의 둘째 아들]은 완적이 지극히 신중하다고 칭찬했다.
매번 그와 더불어 담론할 때마다 그 말은 모두 현묘하고 심원했으며,
한 번도 인물의 선악을 비평한 적이 없었다.
[임성삼의 주(註); 완적은 죽림칠현의 한 사람이다.
 
완적 阮籍
210 중국 허난 성[河南省] 카이펑[開封]~263 중국.
중국 삼국시대 위(魏)나라의 문학가·사상가.
 자는 사종(嗣宗). 일찍이 보병교위(步兵校尉) 벼슬을 지내서 보통 완보병(阮步兵)이라고 불렀다. 괴짜 시인으로 죽림7현(竹林七賢)중에 가장 유명하다.
 죽림7현은 3세기에 활동했던 7인의 시인과 철학자들로, 그들은 세상의 압박으로부터 도피하여 술 마시고 시 짓는 일로 나날을 보냈다. 명문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위(魏 : 220~265/266)의 부패한 정치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미친 사람 행세를 했다. 그는 시와 산문을 통해 지배층을 비판했다. 결국 조정의 압박을 받지 않는 시골에서 쾌락과 시에 묻혀 지냈다. 그는 삶에 대하여 가볍고 쾌락적인 태도를 보이기는 했으나, 그의 시는 전체적으로 음울하고 비관적이며, 어려운 시대에 대한 심오한 견해가 잘 드러나 있다. 작품으로는 〈영회시 詠懷詩〉 82수와 〈완보병집 阮步兵集〉이 있다.] 
 
1-16/1 王戎云:[與 康居二十年, 未嘗見其喜 之色.]
왕융이 말했다.
"혜강과 더불어 20 년을 기거했으나 그가 기뻐하고 화내는 얼굴을 본 적이 없다."
[임성삼의 주(註); 왕융과 혜강은 이 책에서 가장 많이 언급(言及)되는 사람이다. 두 사람 모두 죽림칠현에 속한다. 이 표정 없는 혜강도 사형을 당한다.
왕융; 소설 삼국지에서 제갈공명이 죽은 후 촉을 멸망시킨 진나라의 장군 중의 하나인 종회가 진나라 조정에 천거한 사람이다.]
 
1-19/1 王戎云:[太保居在正始中, 不在能言之流;
1-19/2 及與之言, 理致淸遠, 將無以德掩其言!]
왕융이 말했다.
 "태보 왕상은 '정시'연간 중에 능변가에는 들지 않았으나,
그와 함께 담론해 보면 이치가 맑고 깊다.
그의 덕행이 뛰어나다고 하여 그의 언변이 못하다고 할 수는 없다.
[임성삼의 주(註); 보통은 덕이 있는 사람은 말을 잘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는 법이다.]
 
1-23/1 王平子 胡母彦國諸人, 皆以任放爲達, 或有裸體者.
왕편자와 호무언국 같은 사람은 제멋대로 방종하는 것을 통달했다고 여겼다. 그 중에는 나체로 지내는 자도 있었다.
[임성삼의 주(註); 보통 사람과 약간 다른 행동을 하는 것이 발전된 단계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다 보면 술 먹고 옷을 벗으면서도 그것이 속되지 않은 순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다.]
1-23/2 樂廣笑曰:[名敎中自有樂地, 何爲乃爾也!]
악광이 비웃어 말했다.
"훌륭한 성현의 가르침에도 저절로 즐거운 경지가 있다. 하필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겠는가?"
 
1-27/1 周鎭罷臨川郡還都, 未及上住, 泊靑溪渚.
1-27/2 王丞相往看之; 時夏月, 暴雨卒至, 舫至狹小, 而又大漏, 殆無復坐處.
1-27/3 王曰:[胡威之淸, 何以過此!] 卽啓用爲吳興郡.
[임성삼의 주(註); 위의 글은 번역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나오는 왕승상 왕도는 이 책에서 매우 자주 나온다.]
[왕승상 별전; 왕도는 자가 무홍이며 낭야 사람이다. 그의 조부 왕람은 덕행으로 이름이 났으며, 부친 왕제는 시어사였다. 왕도는 젊어서부터 이름이 알려졌는데, 집안이 대대로 빈궁했지만 느긋한 마음으로 도를 즐겨 일찍이 속세의 일을 가지고 걱정한 적이 없었다.]
 
1-31/1 庾公乘馬有的盧, 或語令賣去.
유량이 타는 말 중에 적로라는 흉마가 있었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팔아 버리라고 말했다.
1-31/2 庾云:[賣之必有買者, 卽復害其生; 寧可不安己而移於他人哉?
유량이 말했다. 팔면 반드시 살 사람이 있을 것이나 다시 그 주인을 해칠 것이다.
어찌 자기에게 편하지 않다고 하여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옮길 수 있겠는가?
1-31/3 昔孫叔敖殺兩頭蛇以爲後人, 古之美談;效之, 不亦達乎?]
옛날 손숙오가 뒷 사람을 위해 머리 둘 달린 뱀을 죽였다는 미담이 있지 않은가? 이것을 본받는 것이 도리에 맞는 일이 아니겠는가?
[임성삼의 주(註); 이 흉마 이야기와 비슷한 내용이 소설 삼국지의 서서와 유비가 만나는 장면에서 나오는 것을 기억해보자.]
 
[사의의 신서(新書)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손숙오가 어렸을 때 길을 가다가 머리 둘 달린 뱀을 보고 죽여서 묻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그의 어머니를 보고 울었다. 어머니가 그 까닭을 묻자 대답하였다.
"머리가 둘 달린 뱀을 본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고 하는데, 오늘 나갔다 보았기 때문에 우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물었다.
"뱀은 어디 있느냐?"
"뒷 사람이 볼까봐 걱정되어 죽여서 묻어 버렸습니다."
이를 듣고 어머니가 말하였다.
"대저 남 모르게 베푼 은덕이 있으면 반드시 남들이 다 알게 복을 받는다고 했으니 너는 걱정 말아라."
후에 마침네 초의 조정에서 이름을 세웠으며, 나중에는 초나라 영윤(승상)이 되었다.
[임성삼의 주(註); 전번에 말했듯이 나는 이 손숙오의 이야기를 매우 좋아한다. 우리 모두 다른 사람을 위하여 머리 둘 달린 뱀을 때려 죽일 수 있는 정도로 남을 생각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세상의 나쁜 법률이 존속할 수 있겠는가?]]
 
1-32/1 阮光錄在剡, 曾有好車, 借者無不皆給. 有人葬母, 意欲借而不敢言.
1-32/2 阮後聞之, 歎曰:[吾有車而使人不敢借, 何以車爲?] 遂焚之.
완유가 섬현에 있을 때 좋은 수레가 있었다. 빌어달라는 사람에게 모두 빌려주었다.
어떤 사람이 모친을 장례지내며 그 수레를 빌리고 싶었으나 감히 말하지 못하였다.
완유는 그것을 나중에 듣고 한탄하였다.
"나에게 수레가 있으나 사람들이 감히 빌려가지 못하니 이 수레를 어디에 쓰겠는가?"
수레를 불태워버렸다.
 
1-35/1 劉尹在郡, 臨終綿 , 聞閣下祠神鼓舞; 正色曰:[莫得淫祀!]
유윤이 군의 태수로 있을 때 죽음이 임박하여 숨이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했는데,
문 아래서 신에게 제사드리느라고 북치고 춤추는 소리를 들었다.
[임성삼의 주(註); 유윤의 목숨을 위한 제사였다.]
정색하여 말하기를 "삿된 신에게 제사지내지 말라." 하였다.
 
 
1-36/1 謝公夫人敎兒, 問太傅:[那得初不見君敎兒?] 答曰:[我常自敎兒.]
사안의 부인이 자식을 가르치면서 남편인 태부에게 물었다.
"어찌하여 당신은 자식을 가르치는 것을 볼 수 없습니까?"
"나는 항상 자식을 가르치고 있소."
[임성삼의 주(註); 아버지의 일상생활을 보여주는 것이 자식을 가르치는 것이다. 사안도 자주 나오는 사람이다.]
 
 
言語第二 언어 제 2 (장)
 
2-8/1  衡被魏武謫爲鼓吏, 正月半試鼓, 衡揚 爲漁陽  ,
예형이 위 무제(조조)의 미움을 받아 북치는 관리로 폄적되어 정월 보름에 북연주 시범을 보였다. 예형은 북채를 잡고 <어양참과>라는 곡을 연주했다.
2-8/2 淵淵有金石聲, 四座爲之改容.
깊고도 장중한 금석(金石)의 소리가 나자 사방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이것을 듣고 표정을 바로했다.
2-8/3 孔融曰:[ 衡罪同胥靡, 不能發明王之夢!] 魏武慙而赦之.
공융이 말했다. "예형의 죄는 서미의 형에 처했던 부열의 죄와 같습니다만, 명군의 꿈에 나타날 수 없었을 뿐입니다." 조조는 부끄러워하며 그를 사면해 주었다.
[임성삼의 주(註); 삼국지 연의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예형을 이형이라고 번역한 책도 있다. 조조가 독단적인 일을 행하자 많은 사람이 반감을 가졌는데 예형을 이것을 조조 앞에서 이야기하여 그 당시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하였다. 마지막 줄의 공융이 한 이야기는 은나라 시조 탕임금이 꿈을 꾸고, 서미라는 형벌을 받고 있는 부열이라는 신하를 재상으로 발탁하여 나라를 부강하게 하였다는 고사를 말하는 것이다.
   
 
공융 孔融 153~208   한메 세계 대백과사전에서
 중국 후한(後漢) 말의 학자. 공자의 20대 손. 산둥성〔山東省〕 출생. 어릴 때부터 민첩하고 학문에 정진하여 차츰 명성을 높였다. 헌제(獻帝) 때 북해(北海;山東北部)의 재상(宰相)에 취임, 동탁의 횡포에 격분했고, 황건적의 평정에 힘썼으나 큰 성과를 얻지 못했다. 학교를 일으키고 유자(儒者)를 중시했으며 손을 대접하기를 좋아했다. 또 강직한 사람으로 한조(漢朝)의 세력 회복에 힘썼으나, 제왕후(帝王侯), 특히 조조(曹操) 등의 미움을 받아 마침내 일족과 함께 피살되었다. 저서에 《공북해집(孔北海集, 10권)》이 있다.]
 
2-9/1 南郡龐士元, 聞司馬德操在潁川, 故二千里候之.
남군의 방사원[방통]은 사마덕조[사마휘]가 영천에 있다는 소문을 듣고 일부러 2천 리나 달려가 방문했다.
[삼국지의 촉지; 방통은 젊었을 때는 순박하기만 하여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 영천의 사마휘가 사람을 알아보는 능력이 있었는데, 방통이 약관의 나이에 사마휘를 만나러 갔다. 사마휘는 뽕나무 위에서 뽕잎을 따면서 방통을 나무아래에 앉게 하고 낮부터 밤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결과 사마휘는 방통에게 그대는 진정 남주의 선비 중에서 으뜸이라고 말하였다. 이로 인하여 그의 이름이 점점 들어났다.
 
사마휘별전; 사마휘는 자가 덕조이며 ... 사람들을 감식하는 안목을 지니고 있었다. 형주에 거처할 때 자사인 유표가 성격이 음험하여 반드시 착한 사람을 해칠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서 입을 꼭 다문 채 담론하지 않았다.
[임성삼의 註; 소설 삼국지에는 유표의 성격이 이렇게 묘사되지 않고 우유부단한 장자(長子)로 적혀있다.]
당시 사람들 가운데 어떤 인물에 대하여 사마휘에게 묻는 자가 있으면, 조금도 그 사람의 고하(高下)를 비평하지 않았고 매번 훌륭하다고만 했다. 그래서 그의 아내가 탓하여 말하길:"사람들이 의심나는 바를 질문하면 당신은 마땅히 토론하여 판단해 주어야 하는 데도 한결같이 모두 훌륭하다고만 하시니, 그것이 어째 사람들이 당신에게 물어보려던 의도이겠습니까?"라고 하자, 사마휘가 말하길:"당신이 말한 것도 또한 훌륭하오"라고 했다. 그의 완곡하고 겸손함이 이와 같았다.]
[임성삼의 註; 그러나 유비에게는 제갈공명과 방통을 천거하여 큰 일을 이루게 하였다. 황희 정승께서 이 이야기를 알지 못하셨을 리가 없다. 더 발전시키어 잘 사용하셨던 것 같다.
 
참고; 아직 여기의 방사원이 삼국지의 봉추 방통인지 확인하지 못하였다. 거의  틀림 없는 것 같기는 하지만.]
 
2-9/2 至, 遇德操采桑, 士元從車中謂曰:
도착하였을 때 사마휘가 뽕잎을 따고 있었다. 방통은 수레 안에서 말했다.
2-9/3 [吾聞丈夫處世, 當帶金佩紫; 焉有屈洪流之量, 而執絲婦之事?]
"내가 듣기에는 대장부는 세상에 처해서 마땅히 금인자수(金佩紫)를 차야합니다. 당신은 어찌 넓은 도량을 굽히고 실잣는 아낙네의 일을 하십니까?"
2-9/4 德操曰:[子且下車. 子適知邪徑之速, 不慮失道之迷.
사마휘가 말하기를:
"그대는 마차에서 내리시오. 그대는 다만 그릇된 지름길이 빠른 줄만 알고 있지 길을 잃고 헤매게 될 줄을 모르고 있소.
2-9/5 昔伯成 耕, 不慕諸侯之榮; 原憲桑樞, 不易有官之宅;
옛날에 백성(伯成)이라는 사람은 밭을 갈면서도 제후의 영화 따위는 부러워하지 않았고, 원헌[공자의 제자]은 뽕나무 지도리를 한 집에 살아도 관리의 저택과 바꾸지 않았소
2-9/6 何有坐則華屋, 行則肥馬, 侍女數十, 然後爲奇?
어찌 꼭 화려한 집에 앉아야 하고, 살찐 말을 타고 가야 하고, 수십명의 시녀가 있어야만 귀하다고 하겠소?
2-9/7 此乃許父所以慷慨, 夷齊所以長歎! 雖有竊秦之爵, 千駟之富, 不足貴也.]
이것이 바로 허부[요임금이 황제의 자리를 물려주려하자 더러운 말을 들었다고 귀를 닦은 사람]가 강개한 바이며, 백이숙제가 길게 탄식한 바이오.
 비록 여불위가 진의 작위를 훔쳐서 천승의 부를 누리기는 하였으나 귀하다고 하기에는 부족하오."라고 하였다.
2-9/8 士元曰:[僕生出邊垂, 寡見大義; 若不一叩洪鐘, 伐雷鼓, 則不識其音響也.]
그러자 방통이 말하기를:"저는 변방 구석에서 자랐기 때문에 대의(大義)를 만나본 적이 드믈었습니다. 만약 어머어마하게 큰 종을 쳐보고 우뢰 같은 소리가 나는 북을 두드려보지 않았다면, 그 음향이 얼마나 큰지 모를 뻔했습니다."라고 했다.
[임성삼의 註(주); 소설 삼국지에는 방통에 대한 것이 많지 않다. 여기에 실제에 가까운 이야기가 있으므로 번역문을 싣는다.]
 
2-10/1 劉公幹以失敬罹罪. 文帝問曰:[卿何以不謹於文憲?]
2-10/2 楨答曰:[臣誠庸短, 亦由陛下網目不疎.]
유공간(유정)이 불경죄에 걸리게 되었다.
조비가 물었다. "경은 어찌 법도를 삼가지 않소?"
유정이 대답하였다. "신이 진실로 용렬하기도 하거니와, 또한 폐하의 법망이 허술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임성삼의 註(주); 조조의 아들 조비도 그 당시에 글의 대가(大家) 중의 한 사람이었다.]
 
2-17/1 鄧艾口喫, 語稱[艾艾……].
등애는 말을 더듬었다. 말할 때 "애애..."하였다.
[임성삼의 註(주); 왕 앞에서는 자기의 이름을 말한다. 소설 삼국지에서 종회와 더북어 초나라를 멸망시킨 그 등애이다.]
2-17/2 晉文王戱之曰:[卿云{艾艾……}, 爲是幾{艾}?]
진 문왕[사마소; 사마중달의 차남]이 놀려 말했다.
"경은 '애애'라고 대답하는데 그 '애'가 몇이나 되오?"
2-17/3 對曰:[{鳳兮, 鳳兮}, 故是一{鳳}]
등애가 대답하였다. "'봉혜, 봉혜'하여도 봉은 한 마리입니다."
[임성삼의 註(주); 논어에 봉혜, 봉혜 즉 "봉이여, 봉이여"로 시작되는 이야기가 있다.]
 
2-19/1 晉武帝始登祚, 探策得[一]: 王者世數, 繫此多少.
진무제[사마염; 사마중달의 맏 아들, 사마중달은 70이 넘어 쿠데타를 일으켰으나 황제가 되지 않고 죽어 이 사마염이 조조의 고손자를 내어쫓고 황제가 되었다]가 처음 등극했을 때
시초점(점의 일종)을 쳐서 "一(일)"을 얻었다. 왕위가 존속하는 세대수가 이것의 많고 적음에 달려있었다.
[임성삼의 註(주); 조조의 위나라를 단지 4 대로 끝내고 세운 진나라이므로 더욱 문제가 된다.] 
   
 
2-19/2 帝旣不悅, 群臣失色, 莫能有言者.
무제가 좋아하지 않자 여러 신하들이 실색(失色)하여 나서 말하는 자가 없었다.
2-19/3 侍中裴楷進曰:[臣聞天得一以淸, 地得一以寧, 侯王得一以爲天下貞.]
시중 배해가 나가 이야기했다. "신이 들으니, 하늘이 하나를 얻어 맑아지고, 땅은 일을 얻어 편안해지고, 왕후는 하나를 얻어 천하를 곧게한다고 하였습니다."
[임성삼의 註(주);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말이다. 여기서 보면 배해가 아부한 것이 되나 실제로 그는 맑고, 화통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2-19/4 帝悅. 群臣歎服.
황제가 기뻐했으며, 모든 신하가 탄복하였다.
 
2-24/1 王武子 孫子荊, 各言其土地人物之美.
왕제와 손초가 각기 자기 고장의 풍토와 인물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했다.
2-24/2 王云:[其地坦而平, 其水淡而淸, 其人廉且貞.]
왕제가 말했다.
"그 땅이 넓고 평탄하며 그 물이 맑고 깨끗하니, 사람이 청렴하며 곧지요."
2-24/3 孫云:[其山 巍而嵯峨, 其水**[ +甲]渫而揚波, 其人磊 而英多.]
손초가 말했다.
"산이 우뚝 솟아 깎아지른 듯하고 물이 넘실거려 물결이 일렁이니, 사람의 기상이 활달하고 영재가 많지요."
[임성삼의 註(주); 어느 곳에서나 뛰어난 사람은 나오기 마련이다.]
2-27/1 中朝有小兒父病, 行乞藥; 主人問病, 曰:[患栖也.]
중조[서진]에서 어떤 아이의 아버지가 병이 났다. 그 아이가 약을 얻으러 갔는데 이웃집 주인이 병명을 물으니 말하기를 "학질에 걸렸습니다."
2-27/2 主人曰:[尊侯明德君子, 何以病栖?] 答曰:[來病君子, 所以爲栖耳.]
주인이 말했다. "너의 아버지는 밝은 덕을 지닌 군자인데 어찌 학질 같은 병에 걸렸을까?"
아이가 대답했다. "군자를 병들게하기 때문에 학[잔인할 학]이라고 하지요."
[임성삼의 註(주); 이 시대에는 이런 종류의 기지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아마 순발력에 있어서는 현대인이 상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2-30/1 庾公造周伯仁, 伯仁曰:[君何所欣悅而忽肥?]
유공이 주백인을 만나보러 갔는데 백인이 말했다.
"그대는 무엇이 그리도 기쁘고 즐겁길래 부쩍 살이 쪘소?"
2-30/2 庾曰;[君復何所憂慘而忽瘦?]
유공이 말했다.
"그대는 무엇이 그리도 근심되고 걱정대길래 부쩍 살이 빠졌소?"
2-30/3 伯仁曰:[吾無所憂; 直是淸虛日來, 滓穢日去耳.]
백인이 말했다.
"나는 근심하는 것이 없소. 다만 청허함이 날로 쌓이고, 나쁜 찌꺼기가 날로 빠져나갈 뿐이오."
 
 
2-34/1 會稽賀生, 體識淸遠, 言行以禮; 不徒東南之美, 實爲海內之秀.
회계의 하생은
몸가짐과 식견이 맑고 고상하며, 언행이 예법에 들어 맞아서,
동남지방의 인재일 뿐만 아니라 사실 천하의 수재이다.
[임성삼의 註(주); 우리도 이렇게 칭찬할 항목과 칭찬하는 표현을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2-38/1  太尉拜司空, 語同座曰:[平生意不在多, 値世故紛 , 遂至台鼎;
치태위(치감)가 사공에 임명되었을 때 동석한 사람들에게 말했다.
"평생토록 나의 바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어쩌다 세상이 몹시 혼란한 때를 만나 삼공의 지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2-38/2 朱博翰音, 實愧於懷!]
주박의 한음처럼 실로 마음에 부끄럽습니다."
 
2-39/1 高座道人不作漢語, 或問此意, 簡文曰:[以簡應待之煩.]
[인도의 중인] 고좌도인은 중국말을 사용하지 않았는데 어떤사람이 그 이유를 물었더니 대답하였다.
"응대의 번거로움을 간단히 하려는 것이다."
 
 
2-41/1 庾公嘗入佛圖, 見臥佛, 曰:[此子疲於津梁.] 于時以爲名言.
유공(유량)이 절에 들어가 누워있는 불상을 보고 말했다.
"이 사람은 중생을 구제하느라 피곤한 것이다."
당시사람들이 이를 명언이라 여겼다.
 
2-48/1 竺法深在簡文坐, 劉尹問:[道人何以游朱門?]
축법심[그 당시 유명한 중]이 간문제와 자리를 함께했는데 유윤이 물었다.
"도인은 어찌하여 붉은 대문에서 노니십니까?"
[붉은 대문은 귀족의 집, 또는 궁궐을 말한다.]
2-48/2 答曰:[君自見其朱門, 貧道如游蓬戶.] 或云卞令.
중이 대답하였다.
"당신은 그것을 붉은 대문으로 보지만, 소승은 쑥대문과 같이 봅니다."
혹은 하령이라는 사람이 물어본 것이라고 한다.
[임성삼의 이야기; 태조 이성계가 왕이 된 후 신하들과 흉금을 터놓고 마음대로 말하는 시간을 가지자고 제안하였다. 태조가 먼저 무학대사를 보고 말했다.
"그대 얼굴을 돼지로 보이오."
무학대사가 대답했다.
"성상(聖上)께서는 제 눈에 부처님으로 보입니다."
태조가 말했다.
"흉금을 터 놓고 말하기로 하였는데 대사는 어찌 내게 아부를 하오?"
무학대사가 말했다.
"부처의 눈으로 보면 모든 것이 부처로 보이는 법입니다."
그러면 태조는?]
 
2-52/1 康法暢造庾太尉, 握 尾至佳. 公曰:[此至佳, 那得在?]
[중인] 유법창이 유태위를 방문하며 매우 좋은 주미[선승이 담론할 때 손에 들고 흔드는 둥근 모양의 총채]를 들고 가자 태위가 물었다.
"이렇게 지극히 좋은 것을 어찌 계속 소유할 수 있었소?"
2-52/2 法暢曰:[廉者不求, 貪者不與, 故得在耳.]
중이 말했다.
"청렴한 자는 달라고 하지 않았고, 탐욕스러운 자에게는 주지 않았으므로 지금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임성삼의 註(주); 여러분들도 좋은 것을 탐욕스러운 자에게 주기 않기를 바랍니다.]
 
2-55/1 桓公北征經金城, 見前爲琅邪時種柳, 皆已十圍, 慨然曰:
  환온이 북정할 때 금성을 지나가다가 지난날 낭야내사로 있을 때 심어놓은 버드나무가 모두 열 아름이 됨을 보고 감회에 젖어 말했다.
2-55/2 [木猶如此, 人何以堪!] 攀枝執條, 泫然流淚.
"나무도 오히려 이러하거늘 사람이 어찌 변화를 견딜 수 있으리오!"하며 나무 줄기를 안고 가지를 매만지면 눈물을 흘렸다.
[임성삼의 註(주); 환온은 동진의 뛰어난 장군이었다. 자주 나오는 사람이다.]
 
2-57/1 顧悅與簡文同年, 而髮蚤白. 簡文曰:[卿何以先白?]
고열은 간문제와 동갑이었는데 머리가 일찍 세었다. 간문제가 물었다.
"경은 어찌 먼저 백발이 되었소?"
2-57/2 對曰:[蒲柳之姿, 望秋而落; 松柏之質, 經霜彌茂.]
"갯버들의 자태는 가을을 바라보면 잎을 떨구나, 송백의 자질은 서리를 맞으면 더욱 무성하기 때문입니다."
 
2-58/1 桓公入峽, 絶壁天懸, 騰波迅急;  歎曰:[旣爲忠臣, 不得爲孝子, 如何!]
  환온이 삼협에 들어갔는데, 절벽은 하늘에 걸려 있는 듯하고 솟구치는 파도가 급속했다. 탄식하며 말하기를,"이미 충신이 되었으면 효자가 되기 어려우니 이를 어찌할꼬!"
[임성삼의 註(주); 이 말은 나중에 우리나라에서도 국난을 당해 결사의 자세로 적을 향해 나갈 때 자주 인용된다. 단지 마지막의 어찌할꼬라는 부분은 빼어버리고 사용한다.]
 
2-63/1 支道林常養數匹馬, 或言道人畜馬不韻. 支曰:[貧道重其神駿.]
  [중인] 지도림이 항상 말을 여러필 기르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 도인이 말을 기르는 것은 운치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도림이 대답했다.
"소승은 그 신묘, 준일함을 중히 여깁니다."
 
2-66/1 王長史與劉眞長別後相見, 王謂劉曰:[卿更長進.]
  왕장사[왕몽]와 유진장[유염]이 헤어진 후에 다시 만났다. 왕이 유에게 말했다.
 "그대는 더욱 성장하고 진전하였구료."
2-66/2 答曰:[此若天之自高耳.]
"그것은 하늘이 저절로[책에서는 스스로] 높아진 것과 같을 뿐입니다."
[임성삼의 주(註); 친구를 만나 그의 성장을 축하할 수 있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대답은 원래 의미가 겸손을 표시하는 것이다.]
 
2-69/1 劉眞長爲丹陽尹, 許玄度出都就劉宿; 牀 新麗, 飮食豊甘.
  유진장[유염]이 단양의 윤[고을을 다스리는 사람]으로 있을 때, 허현도가 도성을 나와 유의 집에 유숙했다. 침상과 휘장이 새롭고 아름다웠으며, 음식은 풍부하고 맛있었다.
2-69/2 許曰:[若保全此處, 殊勝東山!] 劉曰:[卿若知吉凶由人, 吾安得不保此!]
허가 말했다. "만약에 이러한 생활을 누린다면 아마도 동산[당시 은자들이 숨어 살던 곳]보다 낫습니다." 유가 대답했다. "경이 만약 길흉이 사람에게서 비롯된다는 것을 안다면, 내가 어째서 이러한 생활을 누리지 못하겠습니까."
2-69/3 王逸少在坐曰:[令巢許遇稷契, 當無此言.] 二人竝無愧色.
왕일소[글씨 잘쓰는 왕희지]가 그 자리에 앉아 있다가 말했다.
"소부와 허유가 후직과 설을 만났다면, 마땅히 이런 이야기는 없었을 것이오."
두 사람은 모두 부끄러워하였다.
[임성삼의 주(註); 왕희지는 글씨로 보다는 뜻의 웅건함으로 더 유명하였던 것 같다. 소부와 허유는 요임금이 양위한다고 하여도 피한 사람이고, 후직이나 설 중의 한 사람은 오랑캐가 땅을 요구하자 사람을 기르는 땅으로 인하여 전쟁을 하여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없다고 말하고 땅을 주었다.]
 
2-70/1 王右軍與謝太傅共登冶城, 謝悠然遠想, 有高世之志.
  왕우군[왕희지]가 사태부[사안; 오랜동안 승상을 함]와 함께 야성에 올랐다.
사안은 유연히 고원한 생각에 잠겨 세속을 초탈한 뜻이 보였다.
2-70/2 王謂謝曰:[夏禹勤王, 手足  ; 文王肝食, 日不暇給.
  왕희지가 말했다. "우임금은 왕의 일에 근면하여 손과 발에 굳은 살이 박혔고, 문왕은 저녁 늦게야 식사할 정도로 하루 종일 한가한 때가 없었습니다.
2-70/3 今四郊多壘, 宜人人自效; 而虛談廢務, 浮文妨要, 恐非當今所宜!]
  현재 도성의 사방에 보루를 많이 세웠으니, 사람들은 당연히 힘써야 합니다. [진나라가 북방 민족에 쫓기어 남쪽으로 도망가서 겨우 살아남아 있는 때였다.] 그런데도 공허한 담론을 하느라 실무를 제쳐두고, 헛된 문장을 짓느라 중요한 업무를 방해하니 아마 이런 시국에 적절한 일이 아닌가 합니다."
[임성삼의 주(註); 이것이 중국에서 가장 글씨를 잘 쓴 왕희지에게서 나온 말이다.]
2-70/4 謝答曰:[秦任商 , 二世而亡; 豈淸言致患邪?]
사안이 대답하였다. "진이 상앙을 등용하였으나 두 세대만에 망했으니 어찌 청담이 환란을 부른다고 하겠소?"
[임성삼의 註(주); 누가 옳은지는 판단하지 못하겠다.]
 
2-73/1 劉尹云:[淸風朗月, 輒思玄度.]
  유윤[유담]이 말했다. "맑은 바람이 부는 달 밝은 밤이면, '현도[허순; 친구]'를 생각하게 된다."
[임성삼의 註(주); 이렇게 맑고 밝은 이미지를 가진 친구가 있는 것도 다행이고,
또한 이런 맑은 사람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좋은 사회이다.]
 
2-74/1 荀中郞在京口, 登北固望海云:
  순중랑이 경구에 있을 때, 북고산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며 말했다.
2-74/2 [雖未覩三山, 便自使人有陵雲意; 若秦漢之君, 必當 裳濡足.]
"비록 삼산은 보이지 않으나, 저절로 사람에게 구름위로 솟구치는 기상을 품게한다.
만약 진나라와 한나라의 왕들이라면 반드시 옷자락을 걷고 발을 적셔 건너갔을 것이다."
[임성삼의 주(註); 산에 올라 바다를 보면서도 진취적인 것을 생각한다.]
 
2-75/1 謝公云:[賢聖去人, 其間亦邇.] 子姪未之許.
사안이 말했다.
"현인, 성인과 범인과의 차이는 그 사이가 가깝다."
자식과 조카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2-75/2 公歎曰:[若 超聞此語, 必不至河漢.]
공이 탄식하며 말하였다.
"치초(사안의 친구)가 이 말을 들었으면 은하수같이 먼 이야기로 치부하지 않았을 터인데."
[임성삼의 註(주); 사람의 정신적인 능력은 큰 차이가 없다. 단지 젊었을 때 조금 머리 회전이 조금 좋았던 사람이 나이들면서 자만심에 빠져 노력을 않은 경우는 보통의 사람보다 상당히 못해지는 것 같다. 나이가 든 국회의원 중에서 가끔 이런 사람을 보게 된다.]
 
2-81/1 王司州至吳興印渚中看, 歎曰:[非唯使人情開滌, 亦覺日月淸朗!]
  왕사주가 오흥의 인저에 이르러 경치를 둘러보며 감탄하였다.
"사람의 마음을 열어 씻어줄 뿐 아니라, 또한 해와 달의 청명함도 느껴지는구나."
 
2-84/1 孫綽賦遂初, 築室 川, 自言見止足之分.
  손작이 "수초부"를 짓고, 견천에 집을 지은 뒤,
분수에 만족할 줄 아는 도리를 깨달았다고 스스로 말했다.
2-84/2 齋前種一株松, 恒自手壅治之; 高世遠時亦隣居, 語孫曰:
또한 서재 앞에 소나무 한 그루를 심어놓고 항상 손수 가꾸었다.
고세원이 당시 이웃에 살고 있었는데 손작에게 말했다.
2-84/3 [松樹子非不楚楚可憐, 但永無棟梁用耳!] 孫曰:[楓柳雖合抱, 亦何所施?]
"소나무는 청초하여 어여삐 여길 만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영원히 기둥이나 대들보로는 사용될 수 없지요." 손작이 말했다.
"단풍나무나 버드나무가 비록 한 아름 쯤 된다고 하나, 또한 어디에 쓰겠소?"
[임성삼의 註(주); 빠르고 크게 자라는 것은 내부적으로 굳지 않아 쓸 모가 없다.]
 
2-90/1 孝武將講孝經, 謝公兄弟與諸人私庭講習, 車武子難苦問謝,
2-90/2 謂袁羊曰:[不問, 則德音有遺;多問, 則重勞二謝.]
2-90/3 袁曰:[必無此嫌.] 車曰:[何以知爾?]
2-90/4 袁曰:[何嘗見明鏡疲於屢照, 淸流憚於惠風?]
맑은 거울이 자주 비추는 것을 피곤해하고,
맑은 물이 다사로운 바람을 꺼려하는 것을 어찌 일찍이 본 적이 있으리오.
 
2-91/1 王子敬云:[從山陰道上行, 山川自相映發, 使人應接不暇;
왕자경이 말했다.
산음을 따라 길을 걷노라면 산천이 서로 맞비추며 어우러져 있어서 사람에게 하나하나 마주볼 겨를을 주지 않는다.
2-91/2 若秋冬之際, 尤難爲懷.]
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드는 때는 더욱 마음 속의 정회를 표현하기 어렵다.
 
2-92/1 謝太傅問諸子侄:[子弟亦何預人事, 而正欲使其佳?] 諸人莫有言者.
사안이 여러 아들과 조타에게 물었다.
"너희들은 남의 일에 참여하여 어떻게 그들을 훌륭하게 만들고자 하는가?"
모두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임성삼의 註(주); 남의 일에 간섭해서 잘 되도록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2-92/2 車騎答曰:[譬如芝蘭玉樹, 欲使其生於階庭耳.]
사거기가 대답하였다.
"비유하자면 지초와 난초와 옥수를 그들의 섬돌과 뜰에서 자라게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임성삼의 註(주); 그들이 좋은 종류의 풀과 나무이면, 그대로 자기 장소에서 자라도록 놓아두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 윗사람의 말을 어기지 않고 대답하려고 둘러 말했다. "그대로 간섭 않는 것이 좋습니다."]
 
2-94/1 張天錫爲凉州刺史, 稱制西隅, 旣爲符堅所禽, 用爲侍中.
2-94/2 後於壽陽俱敗, 至都, 爲孝武所器;每入, 言論無不竟日.
2-94/3 頗有嫉之者, 於坐問張:[北方何物可貴?]
그를 시기하는 어떤 자가 장천석에게 물었다.
"북방에서는 어떤 물건이 귀한 것이오?"
2-94/4 張曰:[桑 甘香,   革響; 淳酪養性, 人無嫉心.]
장이 대답했다.
"오디는 달고도 향긋하여 올빼미가 먹으면 그의 날카로운 소리가 부드럽게 변하고,
순수한 타락[우유로 만든 좋은 음식]은 온순한 성품을 길러주어 시기하는 마음이 없어집니다."
[임성삼의 주(註); 이런 대답이 중요하고 필요한 것이 아닐지. 부드러우면서도 정확히 주제를 집고 넘어간다.]
 
2-97/1 范 作豫章, 八日請佛有板, 衆僧疑, 或欲作答.
범녕이 예장태수로 있을 때, 사월 초파일에 청불례를 올리면서 목간에 석가를 찬양하는 글을 적어 보냈다. 여러 중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했으며, 몇몇은 답장을 보내야 한다고 했다.
2-97/2 有小沙彌在坐末曰:[世尊默然, 則爲許可.] 衆從其義.
한 사미승이 말석에 앉아있다가 말했다. "세존께서 묵묵히 계신 것을 보니 허락하시는 것입니다.[원래 번역은 "허락해도 괜찮을 것입니다."]" 모두 그의 뜻에 따랐다.
[임성삼의 註(주); 중요하지 않은 일에 의논이 결론에 이르지 않을 때는 이런 기지로 해결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2-98/1 司馬太傅齋中夜坐, 于時天月明淨, 都無纖峠; 太傅歎以爲佳.
  사마태부[사마도자]가 밤에 서재에 앉아 있었다.
그때 하늘에 뜬 달이 청명하여 실오라기 하나 가리운 것이 없었다.
태부는 감탄하며 아름답다고 하였다.
2-98/2 謝景重在坐, 答曰:[意謂乃不如微雲點綴.]
사경중이 그 자리에 있다가 답하였다.
"제 생각에는 엷은 구름이 약간 걸려있는 것만 못합니다."
2-98/3 太傅因戱謝曰:[卿居心不淨, 乃復强欲滓穢太淸邪?]
태부는 농담으로 사경중에게 말했다.
"그대의 마음이 맑지 않으면 그만이지, 어찌 일부러 맑디맑은 하늘을 더럽히려고 하는가?"
[임성삼의 註(주); 나는 이것이 농담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2-106/1 桓玄旣簒位, 後御牀微陷, 君臣失色.
환현이 제위를 찬탈한 뒤, 옥좌가 약간 내려앉았다. 여러 신하는 당황해 하였다.
2-106/2 侍中殷仲文進曰:[當由聖德淵重, 厚地所以不能載.] 時人善之.
시중 은중문이 나가 말했다. "그것은 틀림없이 성덕이 깊고도 무거워 두터운 땅도 견딜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그 말이 훌륭하다고 하였다.
[임성삼의 주(註); 고도의 아첨]
 
政事第三 정사 제 3 (장)
 
3-1/1 陳仲弓爲太邱長, 時吏有詐稱母病求假, 事覺收之, 令吏殺焉.
진중궁이 태구의 현령으로 있을 때, 관리 가운데서 어머니의 병을 사칭하여 휴가를 구한 자가 있었는데, 나중에 일이 발각되자 중궁이 그를 잡아들여 관리에게 사형을 명령했다.
3-1/2 主簿請付獄, 考衆姦.
임무를 맡은 관리가 옥리에게 회부하여 다른 죄를 조사하도록 하였다.
[임성삼의 주(註); 위의 벌로는 사형에 해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3-1/3 仲弓曰:[欺君不忠, 病母不孝; 不忠不孝, 其罪莫大. 考求衆姦, 豈復過此?]
중궁이 말했다. "상관을 속였으니 충성스럽지 못한 것이요, 어머니를 거짓으로 병들었다 했으니 불효다. 불충불효는 그 죄가 막대한 것이니 그 외의 죄를 조사한다고 해도 이보다 더 큰 것이 없을 것이다.
[임성삼의 주(註); 물론 사형을 당했다. 그러나 이 논리의 옳고 그름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적어도 기본적인 잘못이 두 개가 겹치는 행동은 절대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3-3/1 陳元方年十一時, 候袁公; 袁公問曰:[賢家君在太丘, 遠近稱之, 何所履行?]
진원방이 열 한 살 때 원공을 방문했는데 원공이 물었다.
"그대 부친이 태구의 현령으로 있을 때 원근의 사람들이 모두 칭송했는데, 시행한 바가 무엇인가?"
3-3/2 元方曰:[老父在太邱, 彊者綏之以德, 弱者撫之以仁, 恣其所安, 久而益敬.]
저의 부친이 태구로 있을 때, 강한 사람은 덕으로 달래고, 약한 사람은 인으로 어루만져 각기 편안하도록 했더니 날이 갈수록 더욱 공경하였습니다.
3-3/3 袁公曰:[孤往者嘗爲 令, 正行此事; 不知卿家君法孤? 孤法卿父?]
원공이 말했다. "내가 지난날 업의 현령으로 있을 때도 바로 그러한 일을 했었지. 그러니 그대의 부친이 나를 본받았는지, 내가 그대의 부친을 본받았는지 모르겠군."
3-3/4 元方曰:[周公 孔子, 異世而出, 周旋動靜, 萬里如一;
원방이 말했다. "주공이나 공자님은 시대를 달리하여 세상에 나왔으나 그 몸가짐과 행동이 모두 같았습니다.
3-3/5 周公不師孔子, 孔子亦不師周公.]
그러나 주공은 공자를 스승으로 삼지 않았고, 공자는 주공을 스승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임성삼의 주(註); 원공이 남의 아들에게 아버지의 이야기를 하였으니 잘 못한 것이다. 윗 사람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의 위신을 상하지 않고, 자기의 아버지 위신도 상하지 않게 일을 잘 처리하였다.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앞에서 나온 난형난제의 형이 이 원방이다.] 
 
3-13/1 陸太尉詣王丞相咨事, 過後輒蒜異; 王公怪其如此, 後以問陸.
  육태위(육완)가 왕승상(왕도)를 찾아가서 정사에 대해 물어보았다.
시간이 흐르자 이미 결정된 일을 번복하곤 하였다.
왕공이 그러는 것을 이상히 여겨, 후에 이유를 육완에게 물었다.
3-13/2 陸曰:[公長民短, 臨時不知所言, 旣後覺其不可耳.]
육완이 대답했다. "공은 높은 사람이고 저는 우둔한 사람입니다. 그 당시는 어떻게 이야기해야할 지 몰랐었습니다. 그 후 그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3-14/1 丞相嘗夏月至石頭看庾公, 庾公正料事; 丞相云:[暑, 可小簡之.]
승상(왕도)이 일찍이 여름에 석두라는 곳에 가서 유공(유영)을 만났는데, 유공이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승상이 말했다. "더우니 잠깐 쉬었다 하시오."
[임성삼의 주(註); 나는 "더우니 간단히 합시다"라고 번역한다.]
3-14/2 庾公曰:[公之遺事, 天下亦未以爲允.]
유공이 말했다. "공께서 일을 처리하지 않고 놓아두는 것을 천하의 사람들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3-15/1 丞相末年, 略不復省事, 正封 諾之.
승상은 만년에 거의 정사를 돌아보지 않고 다만 꼭 필요한 서류만 처리하였다.
3-15/2 自歎曰:[人言我  , 後人當思此  !]
스스로 탄식하며 말했다. "사람들은 나더러 어리석다고 말하지만, 후대의 사람들은 이 어리석음을 그리워할 것이다."
서광의 역기; 왕도는 3 대에 걸쳐 재상을 지내면서 치세와 난세를 잘 경륜했는데, 정치할 때는 관대함에 힘썼고 일을 처리할 때는 간소함을 좇았다. 그래서 인애(仁愛)의 영예를 후에 남겼다.
[임성삼의 주(註); 이 때는 진나라가 북쪽 땅을 잃고 남으로 내려와 새로운 나라를 세운 직후였다. 이 새로운 나라를 안정한 상태로 만들어 낸 사람이 승상 왕도였다. 여러가지 일이 있었으나 나라를 부드럽게 안정시킨 것이 왕도의 능력이었다. 위와같이 정사를 거의 돌보지 않으면서도 일을 이루었다.]
 
3-18/1 王 劉與林公共看何驃騎, 驃騎看文書不顧之.
왕몽과 유담이 임지둔과 함께 하표기를 방문했는데
하표기는 문서를 보면서 그들을 돌아보지 않았다.
3-18/2 王謂何曰:[我今故與林公來相看, 望卿擺撥常務, 應對玄言;
왕몽이 하표기에게 말했다.
"우리가 지금 임공과 함께 만나보로 왔으니, 그대는 잠시 일상 업무를 제쳐두고 우리와 함께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 바랍니다.
3-18/3 那得方低頭看此邪?] 何曰:[我不看此, 卿等何以得存?] 諸人以爲佳.
어찌 머리를 숙이고 그 삿된 것만 보고 있습니까?"
하표기가 말했다.
"내가 이것을 보지 않는다면, 당신들이 어찌 살아있을 수 있겠소?"
여러사람은 이 말을 훌륭하다고 여겼다.
 
3-19/1 桓公在荊州, 全欲以德被江漢, 恥以威刑肅物. 令史受杖, 正從朱衣上過.
  환공(환온)이 형주자사로 있을 때, 오로지 덕으로써 강한[형주] 땅을 다스리고자 했다. 위엄과 형벌로써 다스리는 것을 부끄러워 했다. 한번은 낮은 관리(영사)가 곤장형을 받았는데, 정작 곤장이 붉은 관복 위로 스쳐지나가기만 했다.
3-19/2 桓式年少, 從外來, 云:[向從閣下過, 見令史受杖, 上 雲眼, 下拂地足.]
(환흠의 셋째아들인) 환식은 나이가 어렸었는데 나가서 놀다 돌아와서 말했다.
"아까 관청을 지나다 관리가 곤장을 맞는 것을 보았습니다. 위로는 구름 끝에 닿고, 아래로는 땅 끝을 스치더군요."했다.
3-19/3 意譏不著. 桓公云:[我猶患其重.]
그 뜻은 곤장이 몸에 닿지 않은 것을 비꼰 것이었다. 환공이 말하였다.
"나는 그래도 그것이 심할까 걱정하고 있느니라."
[임성삼의 주(註); 이 환온이 수 십년간 북방민족에게 빼았겼던 중원을 잠시나마 회복하는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자기 부하에게 강하게 하는 사람만이 전쟁에서 이기는 것은 아니다.]
 
 
文學 第四 문학 제 4 (장)
이 당시의 문학의 개념은 요즈음보다 넓었다. 즉 학술과 현대의 문학의 통칭으로 사용되었다.
 
4-15/1 庾子嵩讀莊子, 開卷一尺許便放去; 曰:[了不異人意.]
  유자숭이 장자를 읽다가 책을 펴서 한 자쯤 되었을 때 곧장 내려놓으며 말했다.
"내 생각과 조금도 다르지 않구먼"
[임성삼의 주(註); 그 때의 책의 모양을 모르나, 한 자라는 것은 앞에서 20 cm 즉 초반부를 말할 것이다.]
 
4-24/1 謝安年少時, 請阮光錄道白馬論, 爲論以示謝.
사안이 젊었을 때 완광록(왕유)에게 '백마론'을 강론해 달라고 청하지 완강록은 논문을 지어 사안에게 보여주었다.
4-24/2 于時謝不卽解阮語, 重相咨盡.
그때 사안은 완광록의 말을 금방 이해하지 못하여 끝까지 거듭 질문을 했다.
4-24/3 阮乃歎曰:[非但能言人不可得, 正索解人亦不可得!]
완강록은 탄식하며 말했다.
"비단 이것을 잘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찾을 수 없고,
이것을 잘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도 찾기 어렵다."
[임성삼의 주(註); 위의 번역은 나와 채지충의 것이고, 이 책에서는
완강록은 감탄하여 말하길, "다만 언변에 뛰어난 사람도 찾아 보기 어려울 뿐 아니라, 정작 이처럼 알려고 애쓰는 사람도 찾아 보기 어렵도다."라고 했다.]
 
[임성삼의 주(註); 백마(白馬)비마(非馬)는 전국시대의 공손룡이 만든 개념이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하얀 말은 하얗기 때문에 '형상'이 하얀 특수한 종류의 말이며, 이것은 보편적 개념의 말이 아니기 때문에 하얀 말은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당시에 가장 뛰어난 두 사람이 잘 설명할 수도 없었고, 배우기를 힘들어하던 주제이긴 하나 의외로 간단한 개념이다.]
 
4-46/1 殷中軍問:[自然無心於稟受. 何以正善人少, 惡人多?] 諸人莫有言者.
  은중군이 물었다.
"자연은 사심없이 사람에게 품성을 부여하는데 어찌 정작 착한 사람은 적고 악한 사람은 많은가?"
여러 사람 가운데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4-46/2 劉尹答曰:[譬如寫水著地, 正自縱橫流漫, 略無正方圓者.]
유윤이 대답했다.
"그것은 예를 들어 물을 땅에 쏟으면 자연히 종횡으로 넓게 흐르지만 정방형이나 정원형이 거의 없는 것과 같지요."
4-46/3 一時絶歎, 以爲名通.
당시 사람들이 그의 말에 탄복하여, 탁월한 해석이라고 생각했다.
[임성삼의 주(註); 위의 한문의 내 해석은 다음과 같다.
"모든 사람이 한꺼번에 찬탄했다. 탁월한 해석이라고."
그러나 실제로 착한 사람이 적은 이유가 그런가?]
 
 
方正第五 정방 제 5 (장)
 
5-1/1 陳太**[ +三]與友期行, 期日中, 過中不至, 太**[ +三]舍去, 去後乃至.
  진식이 친구와 함께 출타하기로 약속했다. 정오에 만나기로 했는데 정오가 지나도록 친구가 오지 않았다. 진식은 그대로 출발하였고, 출발 후 친구가 왔다.
5-1/2 元方時年七歲, 門外戱. 客問元方:[尊君在不?] 答曰:[待君久不至, 已去.]
진식의 아들 원방은 당시에 7 살이었는데 대문 밖에서 놀고 있었다. 객이 원방에게 물었다.
"존친께서는 안계시는가?" 원방이 대답했다.
"당신을 오래 기다려서 오지 않아서 이미 떠났습니다."
5-1/3 友人便怒曰:[非人哉! 與人期行, 相委而去!] 元方曰:[君與家君期日中.
친구가 곧 화를 내며 말했다.
"사람도 아니로군. 남과 함께 출타하기로 약속하고, 버려두고 떠나다니."
원방이 말했다.
"당신과 부친이 정오에 만나기로 약속하고
5-1/4 日中不至, 則是無信; 對子罵父, 則是無禮.]
정오에 오지 않았으니 그것은 신의가 없는 것이고,
아들에게 아버지를 모독하였으니 이것은 예절이 없는 것입니다."
5-1/5 友人慙, 下車引之. 元方入門不顧.
친구가 무색하여, 마차에서 내려 불렀으나 원방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임성삼의 주(註); 역시 "난형난제"의 진원방이다.]
 
5-2/1 南陽宗世林, 魏武同時, 而甚薄其爲人, 不與之交.
남양의 종세림(종승)은 위의 무제[삼국지의 조조]와 같은 시대 사람이었으나
조조의 사람됨을 몹시 경멸하여 그와 교제하지 않았다.
5-2/2 及魏武作司空, 總朝政, 從容問宗曰:[可以交未?]
조조가 사공의 벼슬이 되어 조정의 일을 총괄하게 되자 종세림에게 조용히 물었다.
"교제할 수 있겠소?"
5-2/3 答曰:[松柏之志猶存.] 世林旣以 旨見疎, 位不配德;
종세림이 대답했다. "송백(松柏)과 같은 지조를 여전히 가지고 있습니다."
종세림은 이미 조조의 뜻에 거슬려 눈 밖에 났기 때문에 그의 덕에 어울리는 지위를 가지지 못했다.
5-2/4 文帝兄弟每造其門, 皆獨拜牀下. 其見禮如此.
그러나 문제(조조의 맏아들 조비) 형제는 매번 그의 집으로 찾아가 모두 그의 침상 아래서 독배(서로 맞절하지 않고 한 쪽에서만 절하는 것)하였다. 그가 예우 받음이 이와 같았다.
 
5-3/1 魏文帝受禪, 陳群有慽容. 帝問曰:[朕應天受命, 卿何以不樂?]
위의 문제[조비]가 선양 받았을 때, 진군은 근심스러운 얼굴이었다.
황제가 물었다. "짐은 하늘의 뜻에 응하여 [천자가 되는] 명을 받았거늘, 경은 어찌하여 즐거워하지 않소이까?"
5-3/2 群曰:[臣與華歆服膺先朝; 今雖欣聖化, 猶義形於色.]
진군이 대답했다.
"저와 화흠은 먼저 왕조[한나라]를 가슴에 새겨 잊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 비록 성덕의 교화를 받고 있으나, 여전히 [선조에 대한] 절의가 안색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임성삼의 주(註); 선비라면 나라가 바뀌었을 때 적어도 이 정도는 말해야 한다.]
 
5-5/1 諸葛亮之次渭濱, 關中震動; 魏明帝深懼晉宣王戰, 乃遣辛毗爲軍司馬.
  제갈량이 위수 가에 진을 치자 관중이 크게 동요했다. 위의 명제는 진의 선왕[사마 중달]이 응전할 것을 매우 걱정하여 신비를 파견하여 군대의 사마[장군 아래의 실제 지휘자]로 삼았다.
5-5/2 宣王旣與亮對渭而陳, 亮設誘譎萬方; 宣王果大忿, 將欲應之以重兵.
사마중달이 제갈량과 위수를 사이에 두고 진을 치자, 제갈량은 모든 계략으로 유인했다. 사마중달은 크게 분격하여 장차 대군으로 응전하려 했다.
5-5/3 亮遣閒諜 之; 還曰:[有一老夫, 毅然杖黃鉞,
제갈량이 첩자를 보내어 정탐하게 하였더니 돌아와 대답하였다.
"어떤 한 노인이 의연히 황금도끼를 들고
5-5/4 當軍門立, 軍不得出.] 亮曰:[此必辛佐治也.]
군문에 버티고 서서, 군대가 나가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제갈량이 듣고 말했다. "그 사람은 틀림없이 신좌치[신비]이다."
[임성삼의 주(註); 소설 삼국지에 나오는 장면이다. 몇 번째 원정때인지 기억나는 사람은 나에게 알려주기 바란다.
 제갈공명은 일종의 적국 대장이어서인지 잘 나오지 않는다.]
 
5-20/1 王太尉不與庾子嵩交, 庾卿之不置. 王曰:[君不得爲爾.]
  왕태위는 유자숭과 친한 사이가 아니었는데도 유자숭이 계속 그를 경(卿; 처음에는 관직, 그 후에는 상대에 대한 높임말로 사용되었으나, 남북조시대 이후에는 친한 사이의 동년배나 그 이하의 사람에게 사용했다.)이라고 불렀다.
왕태위가 말했다. "군(君; 경보다 정중한 칭호)은 그렇게 부르지 마오."
5-20/2 庾曰:[卿自君我, 我自卿卿; 我自用我法, 卿自用卿法.]
유자승이 말했다. "경은 나를 군이라 부르고, 나는 경을 경이라 부르면, 나는 나의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고 경은 경의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되지."
[임성삼의 주(註); 상대방을 부르는 호칭에 대하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신중을 기하고 있다. 여기서는 태위라는 높은 벼슬아치를 낮게 부른 것이니 특별히 이야기 되는 것이다.]
 
5-21/1 阮宣子伐社樹, 有人止之.
완선자가 토지신이 있다는 나무를 베려하자 어떤 사람이 말렸다.
5-21/2 宣子曰:[社而爲樹, 伐樹則社亡; 樹而爲社移矣.]
완선자라 말했다.
"토지신이 나무라면, 나무를 베면 토지신이 없어질 것이다. 나무가 토지신이라면, 나무를 베면 토지신이 옮겨갈 것이다."
[임성삼의 주(註); 옛부터 제대로 된 사람은 미신에 얽매이지 않았다.]
 
5-26/1 周叔治作晉陵太守, 周侯ㆍ仲智往別; 叔治以將別, 涕泗不止.
  주숙치가 진릉태수가 되었을 때 [맏형] 주후와 [둘째 형] 중지가 전송하러 갔다. 주숙치가 이별하려 할 때 끊임없이 눈물을 흘렸다.
5-26/2 仲智喪之曰:[斯人乃婦女! 與人別, 唯啼泣.] 便舍去.
둘째형 중지는 화를 내며 말했다. "이 아녀자 같은 놈. 사람과 이별하며 눈물을 흘리다니." 그리고 곧장 내버려두고 떠났다.
5-26/3 周侯獨留與飮酒言話. 臨別流涕, 撫其背曰:[奴, 好自愛!]
맏형 주후는 혼자 남아 주숙치와 함께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별하며 눈물을 흘리자 주후가 등을 토닥거리며 말했다. "아노[주숙치의 어릴 때 자]야 부디 자중자애하거라."
[임성삼의 주(註); 둘째형과 맏형이 모두 옳은 행동을 하였다.]
 
5-28/1 王含作廬江郡, 貪濁狼籍.
왕함작이 여강군의 태수로 있을 때, 탐내고 맑지 못함이 많아 평판이 좋지 않았다.
5-28/2 王敦護其兄, 故於衆坐稱:[家兄在郡定佳, 廬江人士咸稱之.]
왕돈이 그 형을 옹호하려고 일부러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칭찬하였다.
"우리 형님은 군에서 잘하고 계신 모양이오. 여강의 인사들이 모두 칭찬하시는 것을 보니."
5-28/3 時何充爲敦主簿, 在坐, 正色曰:[充卽廬江人, 所聞異於此!]
당시 하충은 왕동의 주부로 있었는데 정색을 하며 말했다.
"제가 바로 여강 사람입니다. 소문은 그와 다릅니다."
5-28/4 敦默然. 旁人爲之反側, 充晏然神意自若.
왕돈은 묵묵히 말이 없었고 주위의 사람들은 불안해하였으나, 하충은 태연자약했다.
 
5-46/1 王中郞年少時, 江**[虎+林+ ]爲僕射, 領選, 欲擬之爲尙書郞, 有語王者.
  왕중랑이 젊었을 때, 강방이 복야라는 벼슬이 되어 관리를 선발하면서 왕중랑을 상서랑에 내정하려 했다. 왕중랑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는 자가 있었다.
5-46/2 王曰:[自過江來, 尙書郞正用第二人, 何得擬我?] 江聞而止.
  왕중랑이 말했다. 강남으로 건너온 이후 상서랑에는 항상 이류의 인물이 기용되었는데, 어떻게 나를 내정할 수 있단 말인가? 강반이 이 말을 듣고 중지했다.
[임성삼의 주(註); 나라를 위한 임무를 담당해야 하나 자기의 기량보다 낮은 위치는 받지 않는 것이다.]
 
5-47/1 王述轉尙書令, 事行便拜. 文度曰:[故應讓杜許.] 藍田云:
  왕술이 상서령으로 전임되어 인사 발령이 나자 곧 부임하였다.
아들 왕문도가 말했다.
"일부러라도 두씨나 허씨에게 양보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남전[왕술]이 말했다.
5-47/2 [汝謂我堪此不?] 文度曰:[何爲不堪! 但克讓自是美事, 恐不可闕.]
"너는 내가 이 직분을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하느냐?"
아들 문도가 말했다.
"어찌 감당하실 수 없겠습니까? 단지 겸양을 잘하는 것은 자고로 훌륭한 일로 여겨지는 것이므로, 겸양을 빼놓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5-47/3 藍田慨然曰:[旣云堪, 何爲復讓? 人言汝勝我, 定不如我!]
왕술이 탄식하며 말했다.
"감당할 수 있다고 하면 어찌 겸양할 필요가 있느냐? 사람들이 너의 자질이 나보나 낫다고 한다마는 이제보니 정녕 나보다 못하구나."
[임성삼의 주(註); 자기가 할 수 있으며, 해야할 경우 주저없이 그 직위를 받아들이는 것도 옳은 것이다.]
 
5-48/1 孫興公作庾公 , 文多托寄之辭; 旣成, 示庾道恩.
손흥공[손탁]이 유량에 대한 뇌문[죽은 후 기리는 글]을 지었다.
그 글에는 자신의 마음을 기탁한 문장이 많았다. 다 짓고 나서 유량의 아들인 유도은에게 보여주었다.
5-48/2 庾見, 慨然送還之, 曰:[先君與君, 自不至於此.]
아들 유도은이 보더니 탄식하며 돌려보내면서 말했다. 선친과 당신은 본래 이런 관계에 이르지 않았습니다.
[원주; 뇌문은 다음과 같다.
아! 나와 공은 풍류가 서로 같았네. 공의 인품을 헤아려 나의 마음을 기탁하노니, 공을 스승처럼 여기네. 군자의 사귐은 서로 사심이 없어야 하는 법. 마음 비우고 옳음을 받아들이며, 진실함을 말하고 그릇됨을 충고했네. 나는 비록 진실로 불민하지만, 삼가 수신(修身)에 힘쓰네. 공의 훌륭한 말씀 영원히 간직하며, 마음의 슬픔을 입으로 읊조리네.]
[임성삼의 주(註); 위의 뇌문은 아주 잘 된 문장이다. 그리고 남이 열심히 노력해 준 글을 거절하는 것은 통상적인 경우에는 예절이 아니다. 단지 이 경우에는 내용이 그렇지 않았으므로 아들이 거절한 것이고, 거절하는 것이 더 큰 예절에 부합되는 것이다.]
 
5-49/1 王長史求東陽, 撫軍不用; 後疾篤臨終, 撫軍哀歎曰:
왕장사가 동양 고을의 태수가 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무군(회계왕)은 그를 쓰지 않았다.
후일 회계왕이 병에 걸려 임종하게 되자 슬퍼하며 말했다.
5-49/2 [吾將負仲祖於此, 命用之!] 長史曰:[人言會稽王癡, 眞癡!]
"내가 왕장사를 저버릴 뻔했군, 그를 태수로 임명하라."
왕장사가 말했다. "사람들이 회계왕이 멍청하다고 말하더니, 정말로 멍청하군."
 
5-50/1 劉簡作桓宣武別駕, 後爲東曹參軍, 頗以剛直見疎; 嘗聽訊, 簡都無言.
  유간은 환온의 별가[주 자사의 속관 중에 가장 높은 지위]가 되었다가 나중에 동조참군[대사마의 참군으로 군 태수와 속관 및 무관의 임면을 담당]이 되었다.
강직한 성품으로 인해 소외당했다. 한번은 의견을 청취하는 자리에서 유간은 아무 말도 없었다.
5-50/2 宣武問:[劉東曹何以不下意?] 答曰:[會不能用!] 宣武亦無怪色.
환온이 물었다. "유간 그대는 어찌하여 의견을 제시하지 않소?"
유간이 대답하였다. "의견이 채용될 것 같지 않아서 그럽니다."
환선무도 그를 탓하려는 기색이 없었다.
[임성삼의 주(註); 공무원 사회에서 이 정도의 표현은 양해가 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5-51/1 劉眞長ㆍ王仲祖共行, 日 未食; 有相識小人貽其餐, 肴案甚盛, 眞長辭焉.
유염과 왕몽이 함께 길을 떠났는데 날이 저물도록 식사를 하지 못했다. 안면이 있는 어떤 소인이 그들에게 식사를 대접했다. 음식이 풍부했으나 유염은 그것을 사양했다.
5-51/2 仲祖曰:[聊以充虛, 何苦辭?] 眞長曰:[小人都不可與作緣.]
왕몽이 말했다. "잠시 허기만 채우면 되는데 어찌 굳이 사양하오?"
유염이 대답했다. "소인과는 결코 교제할 수 없소."
[임성삼의 주(註); 하기는 권력을 가진 조조가 사귀자고 하여도 허락하지 않는 선비의 정신을 가지고 있는 사회였으니, 잠시의 배고픔에 숙일 리가 없다.]
 
5-56/1 羅君章曾在人家, 主人令與坐上客共語. 答曰:[相識已多, 不煩復爾.]
  나함이 남의 집에 갔는데 그 주인이 좌중의 손님과 서로 이야기하라고 말했다. 나함이 대답했다.
"나는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번거롭게 다른 사람을 알 필요가 없습니다."
[임성삼의 주(註); 이런 태도도 의미가 있다.]
5-58/1 王文度爲桓公長史, 時桓爲兒求王女, 王許咨藍田. 旣還, 藍田愛念文度;
  왕문도가 [그 당시 세력을 잡고 있는] 환온의 부하로 있었을 때, 환온이 왕문도의 딸을 며느리감으로 청하였다. 왕문도는 아버지와 상의한 뒤에 결정한다고 하였다.
5-58/2 雖長大, 猶抱著**[ + ]上. 文度因言桓求己女婚. 藍田大怒, 排文度下**[ + ]曰:
..... 왕문도가 환온이 자기의 딸을 며느리감으로 청한다고 하였더니, 아버지가 크게 화를 내며 말했다.
5-58/3 [惡見文度已復癡, 畏桓溫面? 兵, 那可嫁女與之!]
"문도 네가 이렇게 멍청했느냐. 환온의 얼굴을 두려워한다는 말이냐. 군인에게 어찌 딸을 시집보낸다는 말이냐?"
5-58/4 文度還報云:[下官家中先得婚處.] 桓公曰:[吾知矣, 此尊府君不肯耳.]
문도는 돌아가 보고했다.
"저의 집에서 이미 혼처를 정했습니다."
환온이 말했다.
"내 그럴 줄 알았다. 그건 그대의 존부가 허락하지 않았을 뿐이겠지."
5-58/5 後桓女遂嫁文度兒.
나중에 환공은 결국 자기의 딸을 문도의 아들에게 시집보냈다.
 
5-64/1 孝武問王爽:[卿何如卿兄?]
효무제가 왕상에게 물었다.
"경을 경의 형과 비교하면 어떻소?"
5-64/2 王答曰:[風流秀出, 臣不如恭; 忠孝亦何可以假人!]
왕상이 대답했다.
"수려한 풍격은 제가 형보다 못합니다. 그러나 충효만큼은 어찌 남에게 양보할 수 있습니까?"
 
 
雅量第六 아량 제 6 (장)
[원주(原註); 아량은 기품있는 도량을 뜻하는 것인데, 위진시대에 인물을 감식할 때 중요한 표준으로 작용했다. 여기서는 야량을 '태산이 앞에서 무너지더라도 안색조차 변하지 않는다'는 식의 강인한 개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강인한 개성은 난세의 영웅이 가져야 할 필수적인 성격이었다.]
[임성삼의 주(註); 아량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사용될 정도로 단어의 의미는 시대에 따라 많이 변하는 경우도 있다.]
 
6-2/1  中散臨刑東市, 神氣不變; 索琴彈之, 奏廣陵散.
  혜강[임주(任註); 죽림칠현(竹林七賢) 중의 한 사람, 조조의 사위, 앞에서 나왔다]은
도성 동쪽의 시장에서 처형을 당할 때도 안색조차 변하지 않은 채, 금을 가져오게 하여 "광릉산"이라는 곡을 연주하였다.
6-2/2 曲終曰:[袁孝尼嘗請學此散, 吾 固不與, 廣陵散於今絶矣!]
연주를 마치고 말했다. "원효니라는 친구가 이 곡을 배우겠다고 청했으나 내가 전해주지 않았는데, 이 곡은 이제 끊어지게 되었구나."
6-2/3 太學生三千人上書請以爲師, 不許. 文王亦尋悔焉.
태학생 3천 명이 상서하여 그를 스승으로 모시겠다고 청원하였으나 허락되지 않았다. 문왕도 나중에는 그를 처형한 것을 후회했다.
[혜강      COPYRIGHT (C)한국브리태니커회사, 1999
233 중국 양저우[揚州]~262 뤄양[洛陽].
중국의 도가·연금술사·시인.
인습에서 벗어난 사고와 행동으로 중국사회에서 주목을 받던 죽림7현(竹林七賢) 가운데 한 사람이다.
 위(魏)나라의 유력가문에서 태어나 전통적인 교육을 받았고, 위 종실의 사람[임주(任註); 조조의 딸]과 결혼해서 중산대부(中散大夫)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정치에는 관심이 없어, 허난 성[河南省]에 있는 그의 집 근처 대나무 숲에서 유명한 6명의 친구들과 어울려 바둑·춤·술 등을 즐겼다. 자신의 괴벽에 대한 해학적인 묘사와 함께 그의 사상이 섞여 있는 시와 산문들은 도덕과 관습을 벗어나 무위자연을 노래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부(富)와 빈(貧), 강과 약, 선과 악의 모든 경계가 사라질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나중에는 숙련된 금속세공인이 되고 연금술에 몰두함으로써 당시 손으로 하는 노동을 천하게 여기던 유학자들을 경악시켰다. 그러나 인습을 벗어난 행동과 선동적 성격이 다분한 그의 사상은 불행의 원인이 되었다. 그는 귀공자(貴公子)인 종회(鍾會)[임주(任註); 삼국지에서 유선의 촉을 멸망시킨 장군]에게 무례한 태도로 대함으로써 그의 분노를 샀고 이때문에 반란죄의 누명을 쓰고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때 3,000명이 넘는 제자[임주(任註);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실제는 제자가 아니었다.]들이 그를 대신해서 극형을 받기를 원했으나 그는 평온하게 피리[임주(任註); 금(琴; 거문고 금)이지 피리가 아니었다. 대영백과사전에서 한 주제에 이 정도로 틀리는 것이 많은 것은 드믄 일이다.]를 불며 처형당했다.]
 
[임성삼의 주(註); 흔히 중국 무협영화나 소설에서 거문고를 타면서 이 때 없어진 "광릉산"이라는 곡이라고 말한다.]
 
6-3/1 夏侯太初嘗倚柱作書, 時大雨, 霹靂破所倚柱,
  하후태초가 일찍이 기둥에 기대어 글씨를 쓰고 있었다. 그 때 큰 비가 오며, 벼락이 쳐 기대고 있던 기둥이 부서졌다.
6-3/2 衣服焦然, 神色無變, 書亦如故. 賓客左右, 皆跌蕩不得住.
의복이 그을었으나, 안색이 변하지 않았으며, 전과 같이 글씨를 계속하였다. 그러나 좌우의 빈객은 모두 놀라서 평정을 가지지 못했다.
 
6-4/1 王戎七歲, 嘗與諸小兒遊, 看道邊李樹多子ㆍ折枝;
  왕융이 7 살 때 여러 아이들과 함께 놀다가 길 옆의 오얏나무를 보았는데 열매가 많이 열려 가지가 찢어질 정도였다.
[임성삼의 주(註); 앞에서 나왔다. 죽림칠현 중에서 돈을 매우 밝힌 이색적인 현자]
6-4/2 諸兒競走取之, 唯戎不動.
모든 아이들이 다투어 달려가 가지려 하였으나, 오직 왕융은 움직이지 않았다.
6-4/3 人問之, 答曰:[樹在道邊而多子, 此必苦李.] 取之信然.
어떤 사람이 이유를 물었더니 왕융이 답하였다.
"나무가 길 옆에 있으면서 열매가 많으니, 이는 반드시 쓴 오얏일 것입니다." 따서 맛을 보니 과연 그러했다.
 
6-6/1 王戎爲侍中, 南郡太守劉肇遺[筒中箋布]五端; 戎雖不受, 厚報其書.
  왕융이 시중으로 있을 때, 남군 태수 유조가 아주 좋은 베 5 단(100 자)을 보냈다. 왕융은 받지 않았으나 답신을 보내 감사하였다.
 
6-7/1 裴叔則被收, 神氣無變, 擧止自若, 求紙筆作書;
  배숙척(배해)이 체포되었을 때 안색에 변함이 없었으며, 거동도 태연하였다. 종이와 붓을 청하여 유서를 적었다.
6-7/2 書成, 救者多, 乃得免. 後位儀同三司.
유서가 완성된 후, 그의 구명을 청하는 사람이 많아 마침내 사면을 받았다. 후에 의동삼사의 지위에 올랐다.
 
6-11/1 王夷甫與裴景聲志好不同, 景聲惡欲取之, 卒不能回. 乃故詣王, 肆言極罵,
  왕이보는 배경성과 지향하는 바나 좋아하는 바가 달랐다. 배경성은 어떻게 해서든지 그를 억누르려고 했으나 끝내 그를 되돌려 놓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일부러 왕이보를 찾아가 말을 함부로 하면서 심하게 욕을 했다.
6-11/2 要王答己, 欲以分謗. 王不爲動色, 徐曰:[白眼兒遂作.]
왕이보가 자기에게 같이 대꾸하면 비난을 함께 하려는 의도였다. 왕이보는 안색조차 변하지 않은 채 천천히 말했다. "흰자위를 한 놈이 드디어 발작하는군."
 
6-14/1 王丞相主簿欲檢校帳下. 公語主簿:[欲與主簿周旋, 無爲知人 案間事]
  왕승상의 주부가 막하 속관들을 감찰하려고 하자 왕공이 주부에게 말했다.
"내가 그대에게 말해주고자 하는 것이 있는데, 다른 사람들의 책상 머리의 일까지 알려고 하지 말게."
 
6-19/1  太傅在京口, 遣門生與王丞相書, 求女壻. 丞相語 信:
  치태부가 경구에 있을 때 문객을 보내 왕승상(왕도)에게 사윗감을 구한다는 서찰을 전했다. 승상이 치태부의 사절에 말했다.
6-19/2 [君往東廂, 任意選之.] 門生歸, 白 曰:[王家諸郞, 亦皆可嘉,
당신이 동쪽 사랑채에 가서 임의로 고르시오. 문객이 돌아가 치태부에게 말했다.
"왕씨 집안의 여러 도령들은 모두 훌륭했습니다.
6-19/3 聞來覓壻, 或自矜持; 唯有一郞, 在東牀上坦腹臥, 如不聞.]
사윗감을 찾으려 왔다는 말을 듣고는 모두 자긍심을 보였는데, 오직 한 도령만이 평상위에서 배를 드러내 놓은 채로 누워서 아무말도 듣지 못한 듯했습니다."
6-19/4  公云:[正此好.] 訪之, 乃是逸少. 因嫁女與焉.
치공이 말했다. "바로 그 사람이 좋겠다."
찾아가서 보았더니 바로 일소[왕희지의 어렸을 때의 자(字)]였다. 딸을 그에게 시집보냈다.
 
6-24/1 庾小征西, 嘗出未還; 婦母阮, 是劉萬安妻, 與女上安陵城樓上.
6-24/2 俄頃翼歸, 策良馬, 盛輿衛. 阮語女:[聞庾郞能騎, 我何由得見?] 婦告翼.
6-24/3 翼便爲於道開鹵簿盤馬; 始兩轉, 墜馬墮地, 意色自若.
  유익은 길에서 호위행렬을 해산한 뒤 말을 타고 선회했다. 막 두 바퀴를 돌았을 때 말에서 추락하여 땅에 떨어졌으나 안색은 태연자약했다.
[임성삼의 주(註); 사람은 언제나 실수할 수 있다. 그러나 실수한 후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은 큰 능력이다.]
 
6-35/1 謝公與人圍 , 俄而謝玄淮上信至, 看書竟, 默然無言, 徐向局.
  사안이 손님과 바둑을 두고 있었는데, 잠사후 사현이 회수에서 보낸 사신이 도착했다. 서찰을 다보고 나서 묵묵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천천히 바둑판을 향했다.
6-35/2 客問淮上利害? 答曰:[小兒輩大破賊.] 意色擧止, 不異於常.
손님이 회수에서의 승패를 물었다.
대답하기를 "젊은 사람들이 적을 대파하였다는군요."라고 했다.
안색이나 행동거지가 평상시와 다름이 없었다.
[임성삼의 주(註); 이 때 사안은 국무총리였다. 북쪽의 저족 부견의 100만 군대가 중국을 통일하기 위해 남쪽 양자강으로 진군하였다. 부견의 신하 한 사람이 양자강에 대해 걱정을 하자 부견이 말했다.
"우리 100 만 군사가 회초리를 하나씩 양자강에 넣어도 양자강 물이 막힐 것이다."
 그러나 진나라는 8만 군대로 부견에게 부상을 입히고, 수만 명에 달하는 포로를 잡았다. 중국민족이 북방민족에게 거둔 흔하지 않은 승리이다.]
 
6-40/1 太元末, 長星見, 孝武心甚惡之. 夜, 華林園中飮酒, 擧 屬星云:
  태원 연간 말에 장성[꼬리가 달린 혜성; 나라에 불길한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했음]이 출현하자, 효무제는 마음속으로 그것을 꺼렸다. 밤에 화림원에서 술을 마시다가 잔을 들어 장성에게 권하며 말했다.
6-40/2 [長星, 勸爾一 酒, 自古何時有萬歲天子?]
"장성, 그대에게 술 한 잔 권하노니, 자고로 어느 시대에 만세의 천자가 있었는가?"
[임성삼의 주(註); 마음에 꺼리는 것이 있을 때 이렇게 푸는 것도 바람직하다.]
 
 
識鑒第七 식감 제 7 (장)
식감; 인물의 품격과 재능에 대한 인식과 감정을 뜻함.
한나라 말기의 인물 식감; 관료 선발에 직접 영향을 주었다. 조조가 "난세영웅 치세간적"의 평가 후에 출세하기 시작하였다. 주로 골상법에 의했다.
동진의 인물 식감; 인물의 평소의 언행과 태도에 중점을 두었다.
유담이 환온의 도박 태도, 즉 이길 수 없으면 하지 않는 것을 보고 그가 서정에서 촉을 격파할 것이라고 보았다. 치초가 사현이 평소 인물을 잘 파악하여 적재적소에 임명하는 것을 보고 북벌에 성공할 것이라고 단언하였다. 이는 한결 발전한 인물의 평가이다.
 
7-1/1 曹公少時見喬玄, 玄謂曰:[天下方亂, 群雄虎爭, 撥而理之, 非君乎?
조조가 젊었을 때 교현을 만났다.
교현이 말하였다.
"천하가 어지러워, 영웅들이 호랑이처럼 다투고 있다. 이것을 없애 평정할 수 있는 것은 그대가 아니겠는가?
7-1/2 然君實是 亂世之英雄, 治世之姦賊! 恨吾老矣, 不見君富貴, 當以子孫相累.]
        연군실시 난세지영웅, 치세지간적
그대는 정말로 난세의 영웅이요 치세의 간적이다. 내가 늙어서 그대의 부귀한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것이 한일 뿐이네. 나의 자손을 잘 부탁하네."
[임성삼의 주(註); 과연 교현이라는 사람은 조조의 무엇을 보고 이렇게 말했을까? 삼국지에 의하면 여포가 장난삼아 조조에게 왜 그렇게 몸이 말랐느냐고 말하자 "천하를 위해 근심을 해서"라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또한 이 책에서는 조조는 키가 작고 위풍이 없었다고 한다.]
 
7-2/1 曹公問裴潛曰:[卿曾與劉備共在荊州, 卿以備才如何?]
  조조가 배잠에게 물었다.
"그대는 이전에 유비와 함께 형주에 있었소. 그대는 유비의 재능이 어떻다고 생각하시오?"
7-2/2 潛曰:[使居中國, 能亂人, 不能爲治; 若乘邊守險, 足爲一方之主.]
배잠이 말했다.
"만일 중원에 거하면 세상을 어지럽힐 수 있어도 통치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변방에서 요새를 지킨다면 충분히 한 지역의 우두머리는 될 수 있을 것입니다."
 
7-5/1 王夷甫父乂, 爲平北將軍, 有公事, 使行人論不得;
7-5/2 時夷甫在京師, 命駕見僕射羊祜ㆍ尙書山濤.
7-5/3 夷甫時總角, 姿才秀異, 敍致旣快, 事加有理, 濤甚奇之.
양이보는 당시에 총각이었다.
풍채가 수려하고 재능이 남달랐는데, 논변이 매우 명쾌하였으며, 내용이 깊고 뛰어났다.
7-5/4 旣退, 看之不輟; 乃歎曰:[生兒不當如王夷甫邪?]
이미 물러간 뒤에도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탄하였다.
"아들을 낳으려면 왕이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7-5/5 羊祜曰:[亂天下者, 必此子也!]
양호가 말했다. "천하를 어지럽히는 자는 반드시 이 아이일 것입니다."
 
7-6/1 潘陽仲見王敦小時, 謂曰:[君蜂目已露, 但豺聲未振耳.
반양중이 왕돈의 어린시절에 보고 말했다.
"자네는 벌 같은 눈이 이미 튀어나왔고, 승냥이 같은 목소리는 아직 내지 못하나
7-6/2 必能食人, 亦當爲人所食!]
틀림없니 남을 먹을 수 있으나, 또한 남에게 잡아 먹힐 수도 있네."
 
7-7/1 石勒不知書, 使人讀漢書, 聞 食其勸立六國後, 刻印將授之,
  석륵이 글을 몰라 사람을 시켜 한서를 읽게하였다. [항우와 유방이 싸울 때]
역이기가 육국의 후손을 세우라고[각 지역의 왕으로 임령하라고] [한 고조에게] 진언하자 [고조가] 인장을 새겨 장차 그들[여섯 나라의 후손]에게 주려고 하는 것을 듣자
7-7/2 大驚曰:[此法當失, 云何得遂有天下?] 至留侯諫,  曰:[賴有此耳!]
크게 놀라 말했다. "이 방법은 실수가 분명하다. 그런데 어떻게 천하를 얻을 수 있었단 말인가?" 유후(장량)가 와서 간하는 대목에 이르자 말했다.
"이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했군."
[임성삼의 주(註); 석륵은 소설 후삼국지에도 상당히 큰 인물로 나온다. 그는 글을 몰랐어도 천하를 잡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이 판단하는 것은 동일하다.]
 
7-10/1 張季鷹酸齊王東曹 , 在洛, 見秋風起, 因思吳中菰菜ㆍ羹ㆍ 魚膾, 曰:
  장계응[장한]이 제나라 왕의 동조연[보좌역]으로 초빙되어 낙양에 있을 때[벼슬하고 있을 때],
가을 바람이 부는 것을 보고 오나라[자기의 고향]의 고채국[버섯으로 끓인 국]과 농어회 생각이 간절하여 말했다.
7-10/2 [人生貴得適意爾! 何能羈宦數千里以要名爵?] 遂命駕便歸.
인생에서 가장 귀한 것은 뜻에 만족함을 얻는 것이다.
어찌하여 수천 리 떨어진 곳에서 벼슬하면서 명예와 직위를 구할 수 있단 말인가?
마침내 수레 채비를 명하여 고향에 돌아갔다.
7-10/3 俄而齊王敗, 時人皆謂爲見機.
얼마 후 제왕이 패하자 당시 사람들은 모두 조짐을 예견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7-12/1 王平子素不知眉子, 曰:[志大其量, 終當死塢壁間!]
왕평자는 평소에 왕미자를 알아주지 않았다. 말하기를
뜻이 기량보다 커서, 흙 보루 사이에서 죽을 것이다.
[역주(譯註); 왕미자는 진류태수가 되어 엄한 형벌을 대대적으로 시행하다가 보루 경비대에게 살해당했다.]
 
7-20/1 桓公將伐蜀, 在事諸賢, 咸以李勢在蜀旣久, 承藉累葉, 且形據上流,
  환온이 장차 촉을 정벌하여 할 때, 정사를 맏고 있던 여러 인사들은 [적군인] 이세가 오랜동안 촉에 있으면서 대대로 선조의 세력을 이어받았고 게다가 지형상으로도 상류의 삼협을 점거하고 있기 때문에 쉽게 격파할 수 없을 것이라고 모두 생각했다.
7-20/2 三峽未易可克. 唯劉尹云:[伊必能克蜀. 觀其 博, 不必得, 則不爲.]
오직 유윤(유담)은 말했다.
"그는 틀림없이 촉을 격파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가 도박하는 것을 보았더니 반드시 이길 수 없으면 하지 않더군요."
[임성삼의 주(註); 예측한 바와 같이 환온은 촉을 정벌할 수 있었다.]
 
7-22/1  超與謝玄不善, 符堅將問晉鼎, 旣已狼三梁ㆍ岐, 又虎視淮陰矣.
치초는 사현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 [조정에서 사현을 파견하여 다른 나라를 정벌하게 하였다. 모두 사현이 할 수 없을 것으로 말했으나]
7-22/2 于時朝議遣玄北討, 人間頗有異同之論; 唯超曰:[是必濟事.
치초만은 말하기를 "그는 반드시 일을 성공시킬 것입니다.
7-22/3 吾昔嘗與共在桓宣武府, 見使才皆盡, 雖履 之間, 亦得其任; 以此推之,
내가 옛날에 그와 함께 환선무(환온)의 막부에 있을 때 보았는데,
[남들로 하여금] 재능을 모두 발휘할 수 있게 하여 비록 미천한 자일지라도 또한 자신의 임무를 해낼 수 있게 했습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면 틀림없이 공훈을 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
7-22/4 容必能立勳.] 元功旣擧, 時人咸歎超之先覺, 又重其不以愛憎匿善.
공을 이루자 당시 사람들은 모두 치초의 선견지명에 감탄했으며, 또한 그가 애증의 감정으로 남의 장점을 덮어버리지 않는 것을 높이 평가했다.
 
 
賞譽第八 상예 제 8 (장)
상예는 인물의 훌륭한 품격과 재능 등을 칭찬하고 기리는 것을 말한다.
한말에는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능력[治國之器]으로 인물을 평가했으나
위나라와 진나라에서는 진솔하고 강직한 인품, 깨끗하고 맑으며 욕심이 없는 처세태도, 준일하고 대범한 언행, 여러 가지 뛰어난 재능 등을 보다 중요시 했다.
 
8-1/1 陳仲擧嘗歎曰:[若周子居者, 眞治國之器! 譬諸寶劍, 則世之干將.]
  진중거가 감탄하였다.
"주자거(주승)와 같은 사람은 진실로 나라를 다스릴 만한 그릇이다. 보검에 비유하면 세상의 '간장'이다."
[임성삼의 주(註); '간장'은 중국 역사상 가장 좋은 칼의 이름이다. 진중거는 이 책의 첫번째 이야기에 나왔던 사람이다.]
 
8-2/1 世目李元禮:[謖謖如勁松下風.]
세상 사람들이 이원례를 보기를 "곧게 뻗은 소나무 아래에 이는 바람처럼 엄숙하다."
 
8-5/1 鍾士季目王安豊:[阿戎了了解人意.] 謂[裴公之談, 經日不竭.]
종사계(종회)가 왕안풍(왕융)을 품평하였다.
"아융(왕융)은 사람의 의향을 똑똑하게 이해한다."
또한 말하기를 "배공(배해)의 담론을 종일을 해도 다함이 없다."
8-5/2 吏部郞闕, 文帝問其人於鍾會; 會曰:
이부랑의 벼슬이 비어 문제가 종회에게 적임자를 물었다. 종회가 대답했다.
8-5/3 [裴楷淸通, 王戎簡要, 皆其選也.] 於是用裴.
배해는 청통[깨끗하며 널리 이치에 통함]하고,
왕융은 간요[간결하게 요체를 잘 파악함]하니 모두 적임자입니다. 그래서 배해를 기용했다.
 
[임성삼의 주(註); 여러분들도 자기를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위의 두 가지 중 하나를 택하여 모든 일의 적임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두 가지 능력을 겸비하면 더욱 좋습니다.]
 
8-6/1 王濬沖ㆍ裴叔則二人, 總角詣鍾士季; 須臾去後, 客問鍾曰:
 왕융과 배해 두 사람이 총각시절에 종회[초나라를 점령한]를 찾아갔다. 잠시 후 그들이 떠난 후에 다른 사람이 종회에게 물었다.
8-6/2 [向二童何如?] 鍾曰:[裴楷淸通, 王戎簡要.
"방금 전의 두 아이는 어떻습니까?"
종회가 대답했다. "배해는 맑으면서 통달하고 있고, 왕융은 간결하며 요점을 알고 있습니다.
8-6/3 後二十年, 此二賢當爲吏部尙書, 冀爾時天下無滯才.]
이십 년 후에는 이 두 사람이 이부상서가 될 터이니 그 때 천하에는 묻혀있는 인재가 없게 될 것이오."
 
8-10/1 王戎目山巨源:[如璞玉渾金, 人皆欽其寶, 莫知名其器.]
  왕융이 산거원(산도)를 품평하기를
 "마치 가공하지 않은 옥과 정련하지 않은 금과 같아서,
사람들은 모두 그 보배로움을 흠모하면서도, 그 그릇의 이름을 알지 못한다."
[임성삼의 주(註); 왕융과 마찬가지로 산도도 죽림칠현의 한 사람이다. 친구들의 좋은 점을 찾아서 널리 알리는 것은 언제나 좋은 일이다.]
 
8-12/1 山公擧阮咸爲吏部郞, 目曰:[淸眞寡欲, 萬物不能移也.]
  산공은 완함을 이부랑으로 천거하며 품평하였다.
"청순하고 참되며 욕심이 적어서,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움직일 수 없다."
8-13/1 王戎目阮文業:[淸倫有鑒識, 漢元以來未有此人.]
왕융이 완문업을 평가하였다.
"고아한 인품에 감식력을 가졌으니, 한나라 초기 이래로 이런 사람이 없었다."
 
8-14/1 武元夏目裴ㆍ王曰:[戎尙約, 楷淸通.]
무원하가 배해, 왕융을 평가하였다. "왕융은 간략함을 숭상하고 배햐는 청통하다."
 
8-18/1 裴僕射, 時人謂爲言談之林藪.
배복야를 당시 사람들이 평하기를
"담론의 숲이다"라고 했다.
[임성삼의 주(註); 말이 많은 사람도 이렇게 칭찬해주는 것 또한 아름답지 않은가?]
 
8-29/1 林下諸賢, 各有儁才子: 籍子渾, 器量弘曠; 康子紹, 淸遠雅正;
죽림의 여러 명현들은 각기 재능이 빼어난 아들을 두었다.
완적의 아들 완혼은 기량이 넓고 컸으며, 혜강의 하들 혜소는 청정하고 아정하였으며
8-29/2 濤子簡, 疎通高素; 咸子瞻, 虛夷有遠志; 瞻弟孚, 爽朗多所遺;
산도의 아들 산간은 대범하면서 소탈하였으며,
완함의 아들 완첨은 겸허하고 화평하여 고원한 뜻을 지녔으며,
완첨의 동생 완부는 활달하고 명랑하여 신경을 쓰지 않았으며
8-29/3 秀子純ㆍ悌, 竝令淑有淸流; 戎子萬子, 有大成之風, 苗而不秀;
상수의 아들 상순, 상제는 모두 품행이 훌륭하여 맑은 풍모를 지녔으며,
왕융의 아들 왕만자는 대성할 자질을 가졌으나 피지 못하고 요절했으며,
8-29/4 唯伶子無聞. 凡此諸子, 唯瞻爲冠, 紹ㆍ簡亦見重當世.
오직 유령의 아들만 명성이 알려지지 않았다.
무릇 이러한 여러 아들 중에서 완첨이 으뜸이었으며, 혜소와 산간도 당시에 존중받았다.
 
8-37/1 王公目太尉:[巖巖淸峙, 壁立千 .]
왕도가 왕연을 평하였다. 험준한 바위가 수려하게 우뚝 솟아 천 길 벽으로 서 있다.
 
8-42/1 庾公目中郞:[神氣融散, 差如得上.]
유량이 유고를 품평하였다. 정신과 기색이 고요하고 담백하여 거의 최상의 경지에 이른 듯 하다.
 
8-44/1 時人目庾中郞:[善於託大, 長於自藏.]
당시 사람들이 유고를 평하였다. 큰 일을 맡기는 데 능하고, 자신을 감추는 데 뛰어나다.
 
8-50/1  令目叔向:[朗朗如百閒屋.]
변령(변호)가 숙향을 평가했다. 밝게 훤히 트인 것이 마치 백 간짜리 집과 같다.
 
8-52/1 王平子與人書, 稱其兒[風氣日上, 足散人懷.]
왕평자(왕징)이 어떤 사람에게 서찰을 보내 자신의 아들을 칭찬하였다.
"풍격과 기개가 날로 향상되니, 나의 근심을 풀어주기에 충분합니다."
[임성삼의 주(註); 원래 동양은 물론 서양에서도 남의 앞에서 자기 아들을 칭찬하는 것은 예절이 아니다. 그러나 작은 재주가 아니라 인간적인 능력이 향상되는 데 대한 자랑은 용납되었다.
여러분들을 여러분의 아버님께서 이렇게 칭찬해주시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8-62/1 王藍田爲人晩成, 時人乃謂之癡, 王丞相以其東海子酸爲 ;
왕람전(왕술)은 대기 만성형의 사람이었다. 당시 사람들이 그를 어리석다고 했다. 왕승상(왕도)은 그가 동해태수의 아들이라고 하여 초청하여 속관으로 삼았다.
8-62/2 常集聚, 王公每發言, 衆人競贊之.
항상 집회가 열리면 왕도가 발언할 때마다 모든 사람들이 [왕도를] 다투어 칭찬했다.
8-62/3 述於末坐曰:[主非堯舜, 何得事事皆是?] 丞相甚相嘆賞.
왕술이 말석에서 말했다.
"주인[왕승상]이 요임금, 순임금도 아닌데 어찌 말마다 다 옳을 수가 있겠소?"
승상이 [이 말에] 크게 찬탄했다.
 
8-81/1 王仲祖稱殷淵源:[非以長勝人, 處長亦勝人.]
왕중조가 은연원을 칭찬하였다. "장점을 가지고 남을 능가할 뿐 아니라, 그 장점을 살리는 것 역시 남보다 뛰어나다."
[임성삼의 주(註); 모든 면에 뛰어난 사람을 이렇게 칭찬하면 된다.]
 
8-84/1 王長史道江道群:[人可應有, 乃不必有; 人可應無, 己必無.]
왕장사(왕몽)가 강도군(강권)을 평가했다.
"남이 당연히 가지고 있는 것(장점)을 반드시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나,
남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단점)은 그도 반드시 가지고 있지 않다."
 
8-88/1 王右軍道謝萬石, [在林澤中, 爲自 上.] 歎林公, [器朗神儁.] 道祖士少,
왕희지가 사만석을 평했다.
"산림과 소택에 있어서도 저절로 굳세고 고매하다."
임지둔에 대해 평했다. "기량이 고명하고 정신이 준일하다."
조사소(조약)에 대해 말했다.
8-88/2 [風領毛骨, 恐沒世不復見如此人.] 道劉眞長, [標雲柯而不扶疎.]
"털 끝부터 뼈 속까지 풍모가 빼어나니 아마도 평생 이런 사람을 다시 보지 못할 것이다."
유진장에 대해 평했다. "구름 위로 높이 솟구친 나무줄기이나 그 가지는 번잡하지 않다."
[임성삼의 주(註); 우리 모두 위의 평가 중에 하나는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자기의 장점을 잡고 놓치지 않고 계속 개발하면 스스로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8-90/1 殷中軍道韓太常曰:[康伯少自標置, 居然是出 器;
은중군이 한태상을 평하였다. "강백은 젊어서부터 스스로 고상한 품격을 표방하여 확연히 출중한 인재가 되었으며, 그의 발언과 담론에는 종종 정취가 담겨 있다."
 
8-92/1 林公謂王右軍:[長史作數百語, 無非德音, 如恨不苦.]
임공이 왕희지에 말했다. "장사(왕몽)은 수백 언을 말해도 덕음이 아닌 것이 없으나, (상대방을) 몰아 붙이지 못하는 것이 흠인 듯합니다."
8-92/2 王曰:[長史自不欲苦物.]
왕희지가 말하였다. "그는 애당초 상대방을 몰아붙이려 하지 않습니다."
 
8-99/1 殷淵源在墓所幾十年, 于時朝野以擬管ㆍ葛; 起不起, 以卜江左興亡.
은연원(은호)은 (모친의) 묘소에 거의 10 년 동안 머물러 있었다.
당시 조야에서는 그를 관중이나 제갈량에 견주었다. 그가 출사하느냐 않느냐로 강좌(동진; 그 나라)의 흥망을 점쳤다.
[임성삼의 주(註); 이런 평가를 받는 사람이 장관이 되어야 국민의 지지를 받는다.]
 
8-100/1 殷中軍道右軍云:[淸鑒貴要.]
은중군(은호)이 왕우군(왕희지)를 평했다. "고명한 식견을 지닌 존귀한 인물이다."
 
8-108/1 王右軍目陳玄伯:[壘塊有正骨.]
왕희지가 진현백을 평했다. "응어리가 쌓여 있으나 기골이 올곧다."
 
8-109/1 王長史云:[劉尹知我, 勝我自知.]
왕장사(왕몽)이 말했다. "유윤(유담)이 나를 아는 것은 내가 내 자신을 아는 것보다 낫다."
 
8-111/1 許玄度言:[琴賦所謂[非至精者, 不能與之析理], 劉尹其人;
허현도가 말했다. "금부[거문고 치는 책]에서 말하기를 '가장 정통한 자가 아니면 그와 함께 이치를 분석할 수 없다'하였는데 유윤이 그 사람이다.
8-111/2 [非淵靜者, 不能與之閑止], 簡文其人.]
'심원하고 조용한 사람이 아니면 그와 함께 한거할 수 없다'하였는데 간문제가 그 사람이다."
[임성삼의 주(註); 이와같이 자기 나라의 황제도 평가할 수 있었다.]
 
8-116/1 謝公云:[劉尹語審細.]
사안이 말했다. "유담의 언담은 치밀하고 상세하다."
 
8-135/1 劉尹道江道群:[不能言而能不言.]
유담이 강권을 평했다. "말을 잘하지는 못하지만,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잘한다."
 
8-138/1 簡文云:[劉尹茗柯有實理.]
간문제가 말했다. "유담은 차나무 가지처럼 꽉 찬 결이 있다."
 
 
品藻第九 품조 제 9 (장)
품류를 감별함. 여기서는 대부분 부자, 형제, 동료, 친구처럼 서로 관련 있는 사람들을 품평하고 고하와 우열을 가림.
 
방통의 말
9-2/1 龐士元至吳, 吳人竝友之; 見陸績ㆍ顧邵ㆍ全琮而爲之目曰:
방통이 오에 이르자 모든 사람이 그와 친교를 맺었다. 육적, 고소, 전종을 만나보고 그들을 평했다.
9-2/2 [陸子所謂駑馬有逸足之用, 顧子所謂駑牛可以負重致遠.]
육적은 말하자면 둔한 말이나 빨리 달릴 수 있는 쓰임이 있고, 고소는 둔한 소이지만 무거운 짐을 싣고 멀리 갈 수 있다.
9-2/3 或問:[如所目, 陸爲勝邪?]
어떤 사람이 물었다. "당신의 평에 의하면 육적이 고소보다 낫다는 것이요?"
9-2/4 曰:[駑馬雖精速, 能致一人耳! 駑牛一日行百里, 所致豈一人哉?]
방통이 대답했다.
"둔한 말은 비록 꽤 빠르지만 한 사람만 태울 수 있을 뿐이오. 그러나 소는 하루에 백리를 가나 싣는 것이 어찌 한 사람 뿐이리오?"
9-2/5 吳人無以難. [全子好聲名, 似汝南樊子昭.]
오나라 사람들은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다. [방통이 또 말하기를]"전종이 명성을 좋아하는 것은 여남의 번자소와 비슷하다."
 
9-3/1 顧邵嘗與龐士元宿語, 問曰:[聞子名知人, 吾與足下熟愈?]
고소가 방통과 밤을 새워 담론하였다. 묻기를
"듣자하니 그대는 인물을 보는 안목으로 이름이 났다고 합니다. 나와 그대 중에서 누가 더 낫소?"
9-3/2 曰:[陶冶世俗, 與時浮 , 吾不如子;
방통이 말하였다. "세속을 교화하고 시대와 더불어 부침하는 것은 내가 그대만 못하지만
9-3/3 論王覇之餘策, 覽倚仗之要害, 吾似有一日之長.] 邵亦安其言.
왕자와 패자의 책략을 논하고, 화와 복이 생겨나는 관건을 살피는 것은 내가 약간 나은 것 같소."
고소도 그 말에 만족했다.
 
9-4/1 諸葛瑾弟亮ㆍ及從弟誕, 竝有盛名, 各在一國.
제갈근과 동생 제갈량과 사촌동생 제갈탄은 모두 훌륭한 명성이 있었는데 각기 다른 나라에 있었다.
9-4/2 于時以爲[蜀得其龍, 吳得其虎, 魏得其狗.]
당시 사람들이 말했다. "촉은 용을 얻었고, 오는 범을 얻었으나, 위는 개를 얻었다."
9-4/3 誕在魏, 與夏侯玄齊名; 瑾在吳, 吳朝服其弘量.
제갈탄은 위에 있었는데 하후현과 명성을 나란히 하였으며, 제갈근은 오나라에 있었는데 오의 조정이 그의 큰 기량에 탄복했다.
 
9-19/1 明帝問周侯:[論者以卿比 鑒, 云何?] 周曰:[陛下不須牽 比.]
명제가 주후에게 물었다. "논자들이 그대를 치감과 비교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오?"
주후가 말했다. "폐하께서는 굳이 저를 끌어다 비교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9-30/1 時人道阮思曠:[骨氣不及右軍, 簡秀不如眞長, 韶潤不如仲祖,
당시 사람들이 완유를 평하였다.
 "기골은 왕희지에 미치지 못하고,
간결하게 빼어남은 유담만 못하며,
돋보이게 온화함은 왕몽만 못하고
9-30/2 思致不如淵源; 而兼有諸人之美.]
사고의 치밀함은 은호만 못하나,
이 여러 사람의 훌륭함을 아울러 갖추고 있다."
[임성삼의 주(註); 가장 능력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평범한 보통 사람이 아닌가?]
 
9-52/1 有人問謝安石ㆍ王坦之優劣於桓公;
어떤 사람이 환온에게 사안과 왕탄지의 우열에 대해 물었다.
9-52/2 桓公停欲言, 中悔曰:[卿喜傳人語, 不能復語卿.]
환공이 말하다가 멈추고 후회하며
"그대는 남의 말을 전하길 좋아하니 더 이상 그대에게 말할 수 없소."
[임성삼의 주(註); 더불어 말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여기서는 남의 말을 전하는 사람과 더불어 말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9-74/1 王黃門兄弟三人俱詣謝公, 子猷ㆍ子重多說俗事, 子敬寒溫而已.
[왕희지의 아들인] 왕미지 형제 세 명이 함께 사안을 방문했다. 왕미지와 왕조지는 세속의 일을 많이 말했으나 왕헌지는 문안인사만 할 뿐이었다.
9-74/2 旣出, 坐客問謝公:[向三賢孰愈?] 謝公曰:[小者最勝!]
그들이 떠난 뒤 함께있던 사람이 사안에게 물었다. "그 세 사람중 누가 낫습니까?" 사안이 말했다. "막내가 가장 뛰어납니다."
9-74/3 客曰:[何以知之?] 謝公曰:[{吉人之辭寡, 躁人之辭多. } 推此知之.]
객이 말했다.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사안이 말했다. "'훌륭한 사람은 말이 적고 경솔한 사람은 말이 많다'고 했으니 이것으로 미루어 알지요."
 
9-75/1 謝公問王子敬:[君書何如君家尊?] 答曰:[固當不同.]
사안이 왕헌지에게 물었다. "그대의 글씨는 당신의 아버지에 비해 어떻소?"
대답하기를 "당연히 같지 않습니다."
[임성삼의 주; 자기가 낫다는 말을 완곡히 한 것이다.]
9-75/2 公曰:[外人論殊不爾?] 王曰:{外人那得知!]
사안이 물었다.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은 그렇지 않던데?"
왕헌지가 대답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임성삼의 이야기; 왕헌지는 아버지에게도 자기의 경지를 양보하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 왕희지가 글씨를 잘 쓰는 것을 알 뿐 왕헌지를 알지도 못한다. 그러나 왕헌지 자신은 왕희지보다 낫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아들이 틀린 것일까? 나는 아들이 옳다고 생각한다. 아직 왕헌지의 글씨를 보지 못하였으나 헌지가 더 완벽한 글씨를 썼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전의 전통적인 글씨체에서 우리가 좋아하는 새로운 글씨체를 만들어 낸 것은 왕희지이다. 왕헌지는 그것을 더욱 완벽히 표현했을 것이다. 그 후의 사람들은 완벽한 것에서 아름다움을 느끼지 않고 왕희지의 아주 조금 완성도가 떨어지면서 개성있는 글씨를 더 좋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規箴第十 규잠 제 10 (장)
규잠은 바른 말로 경계한다는 뜻이다.
 
10-24/1 遠公在廬山中, 雖老, 講論不輟. 弟子中或有惰者, 遠公曰:
원공은 여산에 있을 때 노령이었으나 강론을 멈추려하지 않았다. 제자 중에 혹 나태한 자가 있으면 원공이 말했다.
10-24/2 [桑楡之光, 理無遠照; 但願朝陽之暉, 與時竝明耳.]
석양의 빛은 멀리 비출 수 없는 법이니, 아침 햇살처럼 시간과 더불어 밝게 빛나기 바랄 뿐이다.
10-24/3 執經登坐, 諷誦朗**[田+ ], 詞色甚苦. 高足之徒, 皆肅然增敬.
경을 들고 자리에 올라 낭랑하고 유창하게 낭송했는데 그 말과 안색이 매우 절실했다. 배움이 높은 제자들은 보두 숙연하게 존경심을 더했다.
 
 
捷悟第十一 첩오 제 11 (장)
첩오는 생각이 민첩하고 깨달음이 신속하다는 뜻이다.
 
조조의 활자
11-1/1 楊德祖爲魏武主簿, 時作相國門, 始構崔 ,
...... [조조가 승상으로 있을 때 승상 집무소의 문을 만들어 서까래를 올렸다.] (양수가 책입자였다.)
11-1/2 魏武自出看, 使人題門作[活]字, 便去. 楊見, 卽令壞之.
조조가 직접 나와서 보고는 사람을 시켜 대문에 "활 活"자를 쓰게 한 뒤 곧 떠났다. 양수가 그것을 보고 즉시 대문을 헐라고 말했다.
11-1/3 旣竟, 曰:[門中{活}, {闊}字; 王正嫌門大也.]
대문을 다시 고치는 일이 끝나자 양수가 말했다.
"문 안에 살 활자가 있으면 넓을 활자가 되니, 왕(조조)께서는 문이 큰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신 것이다."
[임성삼의 주; 조조가 위왕이 되고서도 조심하는 마음이 있었다. 조조가 머리가 좋은 것을 보여준다.]
 
조조의 합자
11-2/1 人餉魏武一 酪, 魏武 少許, 蓋頭上題爲[合]字以示衆; 衆莫能解.
어떤 사람이 위의 무제에게 유즙[임주; 나는 치즈라고 생각한다] 한 독을 보내왔다. 위 무제는 조금 먹은 후 뚜껑 위에다가 "합 合"자를 써서 주위에 보였다. 아무도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11-2/2 次至楊脩, 脩便 , 曰:[公敎人 一口也, 復何疑?]
양수의 차례에 이르자 양수는 곧 먹고 대답했다. "공은 사람들에게 한 입씩 먹으라고 한 것이니 더 이상 무엇을 의심하리오."
 
조조-황견유부
11-3/1 魏武嘗過曹娥碑下, 楊脩從, 碑背上題作[黃絹ㆍ幼婦ㆍ外孫ㆍ**[ + ]臼]八字.
11-3/2 魏武謂脩, 曰:[卿不解?] 答曰:[解.] 魏武曰:[卿未可言, 待我思之.]
11-3/3 行三十里, 魏武乃曰:[吾已得.] 令脩別記所知.
11-3/4 脩曰:[{黃絹}, 色絲也, 於字爲{絶};{幼婦}, 少女也, 於字爲{妙};
11-3/5 {外孫}, 女子也, 於字爲{好};{**[ + ]臼}, 受辛也, 於字爲{辭};
11-3/6 所謂{絶妙好辭}也.]
11-3/7 魏武亦記之, 與脩同;乃歎曰:[我才不及卿, 乃覺三十里!]
 
[임성삼의 주; 이것은 삼국지 연의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조조 - 남은 대나무 - 양수
11-4/1 魏武征袁本初, 治裝餘有數十斛竹片, 咸長數寸, 衆云竝不堪用, 正令燒除.
11-4/2 太祖, 思所以用之, 謂可爲竹 楯, 而未顯其言;
11-4/3 馳使問主簿楊德祖, 應聲答之, 與帝心同. 衆服其辯悟.
11-5/1 王敦引軍垂至大桁, 明帝自出中堂, 溫嶠爲丹陽尹, 帝令斷大桁;
11-5/2 故未斷, 帝大怒, 瞋目, 左右莫不悚懼. 召諸公來, 嶠至不謝, 但求酒炙.
11-5/3 王導須臾至, 徒跣下地, 謝曰:[天威在顔, 遂使溫嶠不容得謝.]
11-5/4 嶠於是下謝, 帝 釋然. 諸公共歎王機悟名言.
11-6/1  司空在北府, 桓宣武惡其居兵權; 於事機素暗, 遣霜詣桓:
11-6/2 [方欲共奬王室, 脩復園陵.] 世子嘉賓出行於道上, 聞信至, 急取霜;
11-6/3 視竟, 寸寸毁裂, 便回還更作霜:自陳老病不堪人聞, 欲乞閑地自養.
11-6/4 宣武得霜, 大喜;卽詔轉公督五郡, 會稽太守.
11-7/1 王東亭作宣武主簿, 嘗春月與石頭兄弟乘馬出郊;時彦同遊者, 連 俱進,
11-7/2 唯東亭一人常在前, 覺數十步. 諸人莫之解. 石頭等旣疲倦, 俄而乘輿回,
11-7/3 諸人皆似從官, 唯東亭奕奕在前. 其悟捷如此.
[임성삼의 주; 위의 것은 사용하다가 남은 대나무 조각을 사용하는 방법이 조조와 양수와 동일하였다는 이야기이다. 양수에 관한 것은 집중적으로 여러 이야기를 적은 것으로 보아 당시의 사람들이 조조에게 죽은 양수의 재능을 매우 아까워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양수는 "계륵"문제로 사형당했다.
 양수의 재능이 뛰어났다고는 하나 내가 분석하는 바로는 백성을 편안하게 한 것이나, 앞에 언급한 사람들처럼 후대에 남을 정의를 주장한 것이 아니고 조조의 심중을 알아맞춘 정도이다. 그러나 역시 이 시대의 평가는 나쁜 점을 분석하지 않고 장점을 살리기 위해 노력을 하였다.]
 
 
夙慧第十二
숙혜는 어릴 때부터 총명하다는 뜻이다.
 
조조와 하안
12-2/1 何晏七歲, 明惠若神, 魏武奇愛之;因晏在宮內, 欲以爲子.
12-2/2 晏乃畵地令方, 自處其中. 人問其故? 答曰:[何氏之廬也.]
12-2/3 魏武知之, 卽遣還.
 
진명제와 태양
12-3/1 晉明帝數歲, 坐元帝**[ + ]上, 有人從長安來, 元帝問洛下消息, **[ +林+曰]然流涕.
12-3/2 明帝問何以致泣? 具以東渡意告之;因問明帝:[汝意謂長安何如日遠?]
12-3/3 答曰:[日遠. 不聞人從日邊來, 居然可知.] 元帝異之.
12-3/4 明日集 臣宴會, 告以此意, 更重問之. 乃答曰:[日近.]
12-3/5 元帝失色, 曰:[爾何故異昨日之言邪?] 答曰:[擧目見日, 不見長安.]
 
12-4/1 司空顧和與時賢共淸言, 張玄之ㆍ顧敷是中外孫, 年 七歲, 在牀邊戱.
12-4/2 于時聞語, 神情如不相屬;瞑於燈下, 二兒共敍客主之言, 都無遺失.
12-4/3 顧公越席而提其耳曰:[不意衰宗, 復生此寶!]
12-5/1 韓康伯數歲, 家酷貧, 至大寒, 止得 , 母殷夫人自成之, 令康伯捉 斗;
12-5/2 謂康伯曰:[且箸 , 尋作複**[巾+軍].] 乃云:[已足, 不復須**[巾+軍].] 母問其故?
12-5/3 答曰:[火在 斗中而柄熱. 今旣箸 , 下亦當**[火+ ], 故不須耳.]
12-5/4 母甚異之, 知爲國器.
12-6/1 晉孝武年十二, 時冬天, 晝日不箸複衣, 但箸單練衫五六重, 夜則累茵褥.
12-6/2 謝公諫曰:[聖體宜令有常. 陛下晝過冷, 夜過熱, 恐非攝養之術?]
12-6/3 帝曰:[晝動夜靜.] 謝公出, 嘆曰:[上理不減先帝.]
12-7/1 桓宣武薨, 桓南郡年五歲, 服始除, 桓車騎與送故文武別;
12-7/2 因桓語南郡:[此皆汝家故吏佐!] 玄應聲慟哭, 酸感傍人.
12-7/3 車騎每自目己坐曰:[靈寶成人, 當以此坐還之!] 鞠愛過於所生焉.
 
 
豪爽第十三 호상 제 13 (장)
호상은 호방하고 활달하다는 뜻임
 
왕돈의 북
13-1/1 王大將軍年少時, 舊有田舍名, 語音亦楚; 武帝喚時賢共言伎 事,
왕 대장군은 젊었을 때, 시골뜨기란 별명이 있었으며 말씨도 촌스러웠다.
무제 사마염이 당시의 명사들을 초청하여 예술적인 재주에 대해 말했다.
13-1/2 人皆多有所知, 唯王都無所關; 意色殊惡, 自言知打鼓吹.
사람들은 모두 잘 알고 있었으나, 왕 대장군만은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가,
못내 떨떠름한 표정으로 북을 칠 줄 안다고 말했다.
13-1/3 帝令取鼓與之, 於坐振袖而起, 揚槌奮擊, 音節諧捷, 神氣豪上, 傍若無人.
무제가 북을 가지고 오라하여 그에게 주었더니,
그는 자리에서 소매를 떨치고 일어나 북채를 들고 격정적으로 연주하였다.
음절이 조화롭고 경쾌하였으며, 기상이 호쾌하고 고매하여, 방약무인의 경지였다.
13-1/4 擧坐歎其雄爽.
온 좌중이 그의 웅혼함과 경쾌함에 감탄했다.
 
 
13-3/1 王大將軍眉目[高朗疎率, 學通左氏.]
왕돈이 자신을 평하였다. "고명하고 진솔하며 학문은 춘추좌씨전에 밝다."
 
13-4/1 王處仲每酒後, 輒詠[老驥伏 , 志在千里; 烈士暮年, 壯心不已.]
왕돈이 매번 술을 마신 후 읊기를
"늙은 준마 말구유에 엎드려 있으나 그 뜻은 천리에 있고,
열사는 노년이지만 장한 마음 끊임 없네."라고 하였다.
13-4/2 以如意打唾壺, 壺口盡缺.
여의[옆에 두고 여러 용도로 사용하던 작은 막대기]로 타구를 두드려 타구 주둥이가 모두 이지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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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삼의 이야기:
    살아가는 과정에서 힘이 없어질 때 이 세설신어 축약본을 읽어보기 바란다. 힘든 세상을 밝게 산 사람들의 마음을 살펴보면 인간성에 대한 믿음이 생겨날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