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오노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저자; 시오노 나나미 출판사; 한길사(1996)

즐거움을 얻기 위해 책을 읽는 시간은 가치가 있다. 우리의 마음이 휴식을 취하며, 읽는 동안 삶의 즐거움을 얻는다. 전문분야에 대한 지식을 얻기 위해 책을 읽는 시간은 소중하다. 이 시간에 우주와 만물에 대한 우리의 아는 바가 넓어지고 깊어진다. 철학 책을 읽는 과정에서 우리의 영혼은 삶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한다. 이 시간이 귀중하지 않을 수 없다. 종교에 대한 책을 읽는 시간은 신과 인간, 사람과 자비 그리고 삶을 넘어선 진리에 대해 몰두하는 시간이다. 역사를 읽는 시간 또한 소중하다. 우리 인류가 여러 가지 일에 대처한 방법을 알려주며, 그 동안 인류가 가졌던 여러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를 좀 더 좁히면 다음의 두 가지가 된다.
첫째는 내가 사는 데 지표가 될 수 있는 "참된 삶"을 알기 위함이다. 참된 삶을 알기 위해 과거 여러 사람들의 삶, 즉 역사와 종교 서적 그리고 위인전을 읽는다. 또한 철학자들이 참된 삶에 대해 알기 위해 일생을 걸쳐 힘들게 노력한 결과를 읽는다. 그리고 인류의 성인이라고 우리가 부르는 분들이 말씀하신 바를 읽는다.
둘째는 한 나라가 어떻게 문화를 발전시켜 인간의 존엄성을 높이고, 이것을 온 인류에게 전파하였는가를 알기 위한 것이다.

빛나는 문화 혹은 강력한 무력으로 인류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 나라에 대한 이야기는 대체로 우리의 통속적인 관심을 끈다. 또한 그 업적을 이룬 과정에 대한 분석은 그 자체로 우리의 분석력과 논리에 대한 능력을 키울 수 있는 의미가 있을 뿐 아니라, 그 업적을 이룩하는 사람들이 가져야 하는 능력에 대해 알게 한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1 권은 로마의 성립 과정에 대한 이야기책이다. 대체로 이야기책은 역사책보다 정확한 개념을 전달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의 능력에 따라서는 학자가 저술한 역사책보다 진실을 더욱 명료하게 제시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로마인 이야기가 이런 범주에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독일의 역사학자 랑케는 "(서양의) 모든 역사는 로마라는 큰 저수지에 녹아든 후 다시 흘러나왔다"며 서양의 로마 이후의 모든 역사는 로마에서 다시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결론지었다. 로마는 존속 기간으로 보나, 영향을 미친 범위로 보나(지배한 지역에 있는 나라의 수가 현재 30 개 국 이상) 세계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 책을 소개하는 데는 나의 글보다 천부적인 이야기꾼인 작가의 글이 훨씬 더 나을 것이다. 1 권은 로마가 작은 도시에서 출발하여 지중해에 영향력이 미치기 시작하는 때까지의 500 년 역사를 적었다. 이 책은 로마가 강대국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자세히 분석하는 능력, 또는 로마의 흥륭기(興隆期)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개성의 묘사에 있어서 플루타크의 영웅전에 미치지는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 나라가 세계적인 국가를 이루고 유지하기 위해 가져야 하는 조건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

거의 비슷한 이야기를 지금의 일본에 대해 할 수 있기 때문에 저자가 이 말을 반복하는 것이 아닐지 모르겠다. 일본은 지금 왜 번영하고 있을까? 깊은 문화와 넓은 영토를 가진 중국, 인도가 모두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지금, 왜 일본만이 과거 100 년간 번영하고 있을까?

내가 아는 한, 일본은 역사에 남는 지성적인 저작물을 남긴 적이 없다.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책은 원씨일기라는 이상한 책이 있을 뿐이다. 또한 왜(倭)라는 나라 이름이 말하는 바와 같이 체력적으로 상당히 작은 종족이었다. 일본사람이 만든 발명품이라고는 가장 원시적인 물건이라고 할 수 있는 인력거 하나 밖에 없다고 알려져 왔으나, 이 인력거마저 서양 선교사가 발명하였다고 판명되었다. 실제로 동양의 역사상 일본의 경제가 중국이나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친 적은 없었다. 단지 왜구들의 노략질이 한 동안 성행했을 뿐이다.

그 일본이 1860 년 대 이후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1940 년에 들어서서 일본이 3 년 동안 차지한 지역을 살펴보자. 동쪽은 날자 변경선 부근에서 시작하여 서쪽은 인도에 침략하려 하였다. 북쪽은 만주에서 시작하여 뉴질랜드까지 지배하였다. 이 힘은 어디에서 난 것일까? 그리고 전쟁에 진 뒤에, 자원도 없으면서 지금까지 세계 경제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일본사람인 저자 시오노 나나미가 이런 점의 분석을 로마의 역사에서 찾으려 한 것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많은 일본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가 이해하지 못하는 일본의 과거 100여 년의 발전의 원인을 로마의 융성의 원인에서 찾으려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는 기원전 600 년 경에 갑자기 발전하기 시작하여 기원전 400 년이면 이미 거의 종료되는 그리스 문명, 기원전 300 년 대 중반에 이유도 없이 군사적으로 강국이 되기 시작하여 기원전 300 년이면 거의 종료되는 마케도니아의 전투력에 대한 내용을 알아야 한다.

기원 후 1200 년대에 우리나라에서부터 폴랜드까지 점령했던, 그 전에는 이름도 없던 몽고족의 힘의 원인을 분석해야 한다. 이와는 다르지만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식민지 확보와, 영국이 그 식민지들을 어떻게 빼앗게 되었는지를 알아야 한다. 거의 같은 시기에 한 고을에서 시작한 청나라가 그 전의 중국민족이 세운 명나라의 영토를 지금과 같이 거의 세 배로 늘려준 이유를 알아보아야 한다.

또 역사상 한 지역도 잘 아우르지 못하던 프러시아가 독일을 통일하고 그 남는 힘으로 그 당시 가장 강력한 육군을 보유하였던 프랑스를 점령한 과정, 그리고 어떻게 세계 제 1, 2 차 대전을 일으킬 수 있었으며, 패배한 후에 급속히 회복할 수 있었는가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역사를 "한 번만 일어나는 일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또한 위의 모든 나라의 발전기에는 물론 여러 가지 우연의 도움이 있었다. 그러나 만일 위의 모든 나라들이 공통적인 요인을 가지고 발전하였다면 그 공통점을 알아서 우리의 앞날에 참고해야 한다.]

p 35 [기원전 753 년 로마의 시작]
그 날은 기원전 753년 4월 21일이었다고 한다. 이 로마 건국기념일은 그 후 2천 년이 넘는 오랜 세월 동안 끊이지 않고 해마다 축하되는 명절이 되었다.
그 해에 로물루스의 나이는 열 여덟. 이 약관의 젊은이와 그를 따라온 3천 명의 라틴족에 의해 로마는 건국된다.

[임성삼의 주(註); 현재 미국 상원의 의원을 senator라고 부르는 것은 로마의 원로원 senatus에서 온 것이다. 현재 미국 상원의원의 수도 역시 100 명이다. 로마의 원로원의 수는 기원전 500 년 경 공화제로 옮아갈 때 300 명이었고, 기원전 1 세기경 다시 독재화가 시작될 때는 600 명, 그리고 황제권이 완성된 4 세기가 되면 2000 명이었다. 대표자의 인원이 어느 정도 이상 늘게 된 후 원로원의 힘이 없어지고 유명무실해졌다. 우리나라에서도 박정희 정권에서 "통일주체 국민회의 대의원"은 임기 6 년인 2000 명에서 5000 명 사이의 인원을 선출하게 되어 있었다. 이 단체가 선출한 대통령은 항상 99.7 %에서 95 % 사이의 찬성표를 얻었다고 기억한다.

이보다 상당히 적은 수로 오랜 기간 성공한 회의로는 30여 명으로 구성된 스파르타의 정책 결정 기관이 있다. 인원수가 작을수록 대표성이 상실되는 대신, 모든 사람이 의견을 말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인원이 작은 회의의 단점으로는 매수로 의결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초기의 교황 선거는 15 인의 추기경으로 이루어졌다. 그 결과 돈을 많이 쓴 쪽이 추기경으로 뽑히게 되었다. 이 매수라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아테네에서는 재판관의 숫자를 500 명으로 하였다. 소크라테스에 사형을 언도한 판결도 500 명의 재판관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런 의미로 볼 때 우리나라의 국회의원의 숫자 273 명은 숫자로 보아서는 잘못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p 39
[전쟁에서 진] 사비니족의 자유민에게는 로마인과 똑같은 완전한 시민권이 부여되었다. 사유재산에 관한 모든 권리와 함께 민회에서의 투표권도 갖게 된 것이다. 사비니족 장로들에게는 원로원 의석도 제공되었다.
플루타르코스는 '영웅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패자조차도 자기들에게 동화시키는 이 방식만큼 로마의 강대화에 이바지한 것은 없다."

전투를 시작하기 전에 흉하다는 점괘가 나온 경우에도 그것을 직접 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효력이 없는 것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제가 눈을 감으면 그만이다.
또한 길흉을 판단하는 것은 사제들의 임무였기 때문에, 그들이 점괘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길흉이 결정되는 실정이었다. 새가 군단 지휘관이 바라는 점괘를 내놓게 하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였다. 요컨대 병사들이 길조라고 믿으면 그만이다. 윗사람은 어느 시대에나 깨어있었다.

[임성삼의 주(註);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는 국가가 이루어진 다음 한 번도 전임 신관이 존재한 적이 없다. 서양의 역사와 크게 다른 점이다. 서양에서 종교와 정치가 분리된 것은 1789 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의 일이다. 현대의 역사가들이 고조선이나 신라의 초기 제도가 정치와 종교가 혼합되어 있었다고 명확하지 않은 이유로 주장하고 있다. 왜 그런 주장을 하여 우리 역사의 발전 단계를 뒤로 돌리려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일본의 역사는 지금까지도 정치와 종교가 상당히 연관되어 있다.]

p 50
최고의 신관부터 사제에 이르기까지 모든 성직자는 민회에서 선거로 결정되었다. ... 말하자면 국가 공무원이다. ... 고정된 계급이 아니니까, 다른 계급이나 관직에 대한 질투심이 생기지 않는다. 자기가 속해 있는 계급을 보전하기 위해 종교를 지나치게 존중하는 일에 집착할 필요도 없다. ... 정교(政敎) 분리를 참으로 자연스럽게 정착시킨 것이야말로 누마가 이룩한 가장 중요한 업적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p 79 [기원전 509 년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이전]
루키우스 유니우스 브루투스는 역사에 이따금 등장하는, 선견지명과 실행력을 겸비한 인물이었을 것이다. ... 브루투스라는 성도 원래 조상한테서 물려받은 성이 아니라, 바보를 뜻하는 말에서 생겨난 별명이다. 그는 '바보'로 멸시당하면서 제멋대로 전횡을 휘두른 타르퀴니우스 시대를 참고 견디며 은인자중해 왔다고 한다. 그 별명이 결국에는 성이 되었다.

오백인 회의라고 불러도 좋은 기관인데, 각 구에서 추첨으로 뽑힌 30세 이상의 시민으로 구성된다. 제비뽑기니까 출신 가문이나 재산이나 재능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모두 500 명으로 이루어진 이 기관이 실제 정무를 담당했다. 의장조차도 한 달에 몇 번 열리는 회의 때마다 추첨으로 선출했다고 한다.

클레이스테네스가 실시한 마지막 개혁은 일종의 자체 정화제도인 '도편추방제'다. 아테네에서 추방하고 싶은 사람의 이름을 도자기 파편에 써서 투표했기 때문에 '도편추방'이라고 부른다. 독재정치를 피하기 위해 이 제도가 만들어진 것은 분명하다. 민회는 해마다 투표를 해서 과반수의 찬성만 얻으면, 그 권위와 권력이 아테네에 위험하다고 간주되는 시민을 10년 동안 국외로 추방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게 되었다. 일설에 따르면, 한 사람을 추방하는 데에는 6천 개의 도자기 파편이 필요했다고 한다.

이 추방에는 그 시민의 명예를 더럽히는 의미는 전혀 없고, 도편추방을 당해도 별로 부끄러운 일로 생각하지 않았다. 추방당한 당사지는 시민의 권리를 잃어버리는 것도 아니고, 재산을 몰수당하지도 않았다. 단지 10년 동안 아테네에서 추방되어 국외에서 살아야 했을 뿐이다. 10년이 지나면 다시 아테네로 돌아와 [높은 지위인] '스트라테고(전략 담당관)'에 뽑힐 수도 있었다.

어쨌든 이 시기에 세계 역사상 처음으로 일반 시민이 국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정치체제가 탄생했다. 후세는 이것을 '직접 민주주의'라고 부른다. 시민 개개인이 권력 행사와 직접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까지 살펴보아도, 타국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할 만큼 규모가 크고 중요한 국가에서 이런 형태의 직접 민주주의를 시행한 것은 이 시기의 아테네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p 116
당시의 아테네의 유권자 수, 즉 성인이 된 남자 시민의 수는 3만 내지 4만이었다고 한다.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에 살고 있거나 무역이나 그밖의 일로 해외에 나가기도 하여, 수도 아테네에서 열리는 민회에 참석하지 못한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평상시 민회에 참석하는 사람은 1만 명 정도였다고 한다.

[임성삼의 주(註); 그러므로 도편추방에 6000 표가 나오면 과반수 정도가 된다. 그리고 후일 기원전 430년 경 페리클레스의 개혁으로 혈통이 불분명한 사람에게서 시민권을 박탈한 후 시민의 수가 1만 5천 정도로 감소하였다. 로마가 시민의 수를 계속 늘려간 것과 대조되는 현상이다.]

많은 사람이 발언하고 싶어하였으므로 연설의 시작이 서투른 사람은 당장 야유를 받고 물러났다고 한다. 어떤 면으로는 민주적이 아닌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현재 우리 나라 국회의 발언자를 선정하는 방법은 2500 년 전의 아테네보다도 민주적이 아닌 것 같다.]

p 117
그리스에서 아테네만이 이런 경향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리스의 폴리스 사회는 실제로는 뜻밖에도 배타적이었다. 아무리 오랫동안 아테네에 살아도, 아니 아테네에서 태어나 아테네에서 죽어도, 외국인은 시민권을 얻을 수 있는 길이 막혀 있었다. 경제나 문화 분야에서 이루어진 '자유화'를 생각하면 불가사의한 일이지만, 모든 시민에게 평등한 권리를 주려면 자연히 시민의 수를 제한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소크라테스는 아무리 악법이라도 조국의 법률에 따르겠다고 말하면서, 도망치라는 권유도 물리치고 사약을 마셨다. 같은 철학자라도 아리스토텔레스는 법을 위해 목숨을 버리지 않고 재빨리 도망쳤다. 아테네 시민인 소크라테스에게 아테네는 조국이었지만, 아테네 태생이 아닌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네 법률을 위해 목숨을 버릴 의리는 없었던 것이다.
이 점에서도 로마는 그리스와는 다른 길을 택했다. 이런 로마에 대해 플루타르코스는 "패배자를 동화시키는 방식만큼 로마를 강대하게 만든 요인은 없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이국인에게 자국민과 똑같은 세금을 물리면서도 피선거권은커녕 선거권조차 인정하지 않는 국가는 오늘날에도 드물지 않다.[임성삼의 주(註); 일본, 그리고 한국이 이런 제도를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나라이다.]

[임성삼의 주(註); 기원전 490년의 마라톤 전투에서는 그리이스군 만 천명, 페르시아군 11만 명이 싸운 결과 페르시아군이 6만 4천 명 전사하고 그리이스군이 192 명 전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전투 이후 걸프전에 이르기까지 중동의 국가와 유럽의 국가 사이의 전쟁을 정리해 두는 것도 인류 역사를 알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이 전투에서 아테네 군이 적을 향해 소리지르면서 뛰어 돌격하는 전법을 처음으로 사용하였다고 플루타크 영웅전에 기록되어 있다. 이 전법은 그리스가 세계사에 자신을 나타내는 데 크게 기여했다. 용감하기로 소문난 스파르타 군은 오히려 적군이 쳐들어 오는 것을 열을 지어 막아내는 전법을 주로 사용하였었다.]

p 140
페리클레스는 클레이스테네스의 개혁으로 다져진 아테네의 민주정치를 더욱 철저하게 민주화했다. 그때까지는 정부관리와 행정 및 군사 담당자를 민회에서 선거로 뽑았지만, 페리클레스는 재능과 경험이 중요한 군사와 재정 책임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추첨으로 선출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이 모든 공무원에게는 공무에 종사하는 기간 동안 일당을 지불하기로 했다.
추첨과 일당 지급을 결합한 이 제도는 역사상 최초이며,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국가로는 달리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한 직접 민주주의의 사례가 되었다.

[임성삼의 주(註); 민주주의라는 말을 많이 하여도 민주주의를 실천하기 위한 제도가 어떠해야 하는가는 정하기 어렵다. 모든 시민이 추첨에 의해 직접 행정을 담당한다는 제도는 우리에게 상당히 충격적일 수 있다. 이런 평등성은 현재 실시하기 어려울지라도 시민이 민주정치에 참여한다는 상징적인 제도를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는 것이 좋을 것 같다.

p 145
흔히 말하는 '페리클레스의 황금시대'는 기원전 460년부터 기원전 430년까지 30년 동안이다. 후진국 로마의 원로원 의원 세 명이 선진국 그리스를 시찰하기 위해 방문한 것은 기원전 453년부터 기원전 452년까지 1년 동안이라고 한다. ... 로마의 시찰단은 페리클레스의 정책이 구름 한 점 없는 상태로 순조롭게 시행되고 있던 시대의 아테네를 보았던 것이다.

p 160 [위는 거의가 아테네에 대한 내용이고, 아래는 로마에 대한 설명이다.]
기원전 449년, '포로 로마노'[임성삼 주(註); 로마의 정치적인 중심인 광장(廣場)] 한켠에 한 항목씩 동판에 새겨진 '12표법'이 발표되었다. 그 내용은, 잔뜩 기대하며 기다렸던 평민은 물론 협상파인 귀족들조차도 아연실색할 만한 것이었다. 새로 추가된 항목은 하나도 없었다. 로마인의 대다수는 도대체 무엇을 위한 그리스 시찰이었느냐고 생각했을 게 분명하다. ...
오늘날에는 로마 법 전문가들도 3분의 1 정도밖에 모른다고 한다. 그것은 평판이 너무 나빠서 개정이 잇따랐기 때문일 것이다.

p 175
기원전 390년 7월 18일, 로마군은 테베레 강 상류에서 맞이한 적에게 맥없이 패하고 말았다. 로마 패잔병은 개미새끼들처럼 사방팔방으로 흩어져 도망쳐 버렸다. 무방비 도시가 된 로마에 켈트족이 들어왔다. 로마를 둘러싸고 있는 장벽 군데군데에 입을 벌리고 있는 성문조차도 닫혀 있지 않았다고 한다.

일곱 달 동안 계속된 야만족의 로마 점령이 시작되었다. ... 로마가 두 번째로 적에게 짓밟히기까지는 로마 제정 말기인 서기 410년에 역시 야만족인 서고트족이 침입할 때까지 800년을 기다려야 한다.

p 180
아테네에서 기원전 399년에 소크라테스를 피고로 하는 재판이 열렸다.

p 190
기원전 367년 당시의 로마는 전면 개방을 택했다. ... 중요한 공직을 경험한 사람은 귀족이든 평민이든 원로원 의석을 취득할 권리를 갖는다고 규정한 법률이다. 평민계급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 임무인 호민관조차도 퇴임한 뒤에는 원로원 의원이 될 수 있다. 노동조합장이 퇴임한 뒤에 그 회사의 중역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p 195
인류는 종종 선견지명이 뛰어난 인물을 배출했다. 그에게는 앞이 보이니까. 현재 무슨 일을 해야 할 것인가를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인식한 것뿐이라면 선견지명을 가진 지식인으로 끝나 버린다. 보고 이해한 것을 실천에 옮기려면 권력이 필요하다. 마키아벨리도 "무기를 갖지 않은 예언자는 자멸한다."고 말했다. 트로이의 왕녀 카산드라는 트로이가 그리스군에게 멸망할 것을 예언하고, 그것을 막기 위한 대책을 트로이 사람들에게 말했지만, 아무도 상대해 주지 않았다. 유럽에서는 지금도 설득만 하면 들어줄 거라고 믿는 사람을 '카산드라'라고 부른다.

p 229
로마에서는 오랫동안 헌신적으로 봉사한 노예에게 주인이 보답하는 의미로 자유를 주거나, 노예 자신이 저축한 돈으로 자유를 살 수 있었다. 이렇게 하여 자유를 회복한 노예를 해방노예라고 부르고, 그들의 자식대에는 로마 시민권을 취득할 수 있었다. 시민권만 수중에 넣으면 그후 사회에서의 출세는 그 사람 자신의 재능과 팔자에 달려 있다.

[임성삼의 주(註); 피로스는 그리스 북부 도시국가 에페이로스의 왕. 이탈리아 남부로 원정을 하였다.로마가 이탈리아의 남부를 통일하는 마지막 과정이 피로스와의 전쟁이다. 이탈리아의 북부는 더 많은 세월이 지난 후에야 로마의 영토가 된다. 기원전 282 년까지의 로마는 이탈리아의 중부를 영토로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p 264 [피로스는 전쟁에서 600 명의 로마군을 포로로 잡았으나 강화를 위해 석방한다.]
"나와 당신들의 싸움은 전쟁터에서 결말을 냅시다. 다만, 포로가 된 로마 병사들은 강화 체결을 미리 축하하는 뜻으로 석방할 테니까, 데리고 돌아가도 좋소."
로마의 특사는 600명의 포로를 데리고 돌아가는 것은 받아들였지만 강화가 성립되지 않을 경우에는 그 포로들을 다시 피로스에게 돌려보내는 것을 조건으로 내세웠다.
귀환한 특사를 맞아, 로마 원로원은 다시 토의를 시작했다. 결국 피로스의 제안을 거절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600명의 로마 병사는 오랜만에 만난 가족과 다시 헤어져 다시 적에게 돌아갔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p 265
거의 같은 무렵, 로마 원로원을 몰래 찾아온 외국인이 있었다. 피로스의 시의(侍醫)가 보낸 밀사였다. 그는 피로스를 독살할 준비가 되어 있는데, 그 대가로 무엇을 해 줄 것이냐고 물으러 온 것이다. 원로원은 이 일의 자초지종을 피로스에게 알렸다. 피로스는 너무 고마운 나머지, 그 보답으로 로마군 포로 600명을 다시 돌려보냈다. 로마 쪽도 그냥은 받을 수 없다면서 로마에 포로로 잡혀와 있던 그리스 병사들을 송환했다.

[임성삼의 주(註); 로마의 융성(隆盛)을 계속시킨 것은 앞에서 나온 여러 제도와 타 민족을 받아들여 동화시킨 것이 원인일 수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로마 이외의 다른 나라들의 융성기에서도 위와 비슷한 정의로운 사람들에 대한 실화(實話)를 빠짐없이 찾아 볼 수 있다. 즉 자기에게 손해가 되어도 목숨을 걸고 약속을 지키는 행동. 나에게 대단히 이롭고 적에게 해가되는 일이어도 정의로운 방법이 아니면 경멸로 거부하는 자연스러운 마음이 공통적으로 보인다. 로마인의 정치 제도가 공화정에서 제정(帝政)으로 변화하였어도 로마는 계속되었으나 위의 정의감은 서서이 사라졌으며, 이 정의감이 사라진 후에 로마가 멸망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p 231 참고자료로 피로스의 능력에 대한 것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과 그에게 승리를 거둔 로마의 장군 스키피오가 우연히 로도스 섬에서 만났다. ... 스키피오는 연장자에게 경의를 표하고, 정중한 말투로 물었다.[임성삼의 주(註); BC 190 년경이라고 생각됨]
"우리 시대에 가장 뛰어난 장수는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한니발은 즉석에서 대답하였다.
"마케도니아의 왕 알렉산드로스(영어로는 알렉산더; 기원전 356 - 323)요. 페르시아의 대군을 소규모 군대로 무찔렀을 뿐만 아니라,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경계를 훨씬 넘어선 지방까지 정복한 업적은 실로 위대하다고밖에는 말할 수 없소."
스키피오가 다시 물었다.
"그럼 두 번째로 뛰어난 장수는 누굽니까?"
한니발은 이번에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에페이로스의 왕 피로스요. 그는 우선 병법의 대가요. 그리고 숙영지 건설의 중요성을 처음으로 인식한 사람이기도 하오."
스키피오는 다시 질문을 계속했다.
"그렇다면 세 번째로 뛰어난 장수는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카르타고의 명장은 이 질문에도 주저없이 대답했다.
"그건 물론 내 자신이오."
자마 전투[임성삼의 주(註); 한니발과 스키피오가 겨룬 제 2차 포에니 전쟁의 마지막 전투, 기원전 202 년]를 승리로 이끈 공적으로 아프리카누스라는 존칭까지 받은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는 이 말에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만약 그대가 자마에서 나한테 이겼다면?"
한니발은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렇다면 내 순위는 피로스를 앞지르고 알렉산드로스도 앞질러 첫 번째가 되었을 거요."

p 277 맺음말
로마가 융성한 요인에 대해, 세 명의 그리스인은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할리카르나소스의 디오니소스는 종교에 관한 로마인의 사고방식이 그 요인이라고 말했다. 인간을 계율로 다스리기보다 인간을 수호하는 형태의 종교인 로마 종교에는 광신적인 경향이 전혀 없고, 그래서 다른 민족과도 대립관계보다는 내포관계로 나아가기가 쉬웠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종교를 인정한다는 것은 다른 민족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뜻이리라.

정치 지도자이기도 했던 폴리비오스는 로마의 독특한 정치체제의 확립이 로마가 융성한 요인이라고 말했다. 각각 공동체 일부의 이익만을 대표하는 경향이 있는 왕정과 귀족정과 민주정이라는 정치체제를 고집하지 않고, 집정관 제도를 통해 왕정의 장점을 살리고, 원로원 제도를 통해 귀족정의 장점을 살라고, 민회를 통해 민주정의 장점을 살린 로마 공화정의 독자적인 정치체제에 융성의 요인이 있다는 것이다. 이 독자적인 정치체제를 확립함으로써, 로마는 국내의 대립관계를 해소하고 거국일치 체제를 구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플루타르코스는 패자까지 포용하여 동화시키는 로마인의 생활방식이야 말로 로마가 융성한 요인이라고 단언했다. 플루타르코스의 모국인 그리스에서는 그리스인이 아닌 민족을 바르바로이(야만인)라고 불렀을 뿐만 아니라, 같은 그리스인 사이에서도 스파르타 출신이 아테네 시민권을 취득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반면에 로마에서는 어떠했는가, 같은 라틴족에 대해서는 출신지를 따지지 않고 시민권을 부여했으며, 적국 출신인 경우에는 일정 기간 로마에 거주하기만 하면 시민권을 취득할 수 있었다. 다만, 로마인은 이기지 않고 관용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이기고 나서 관용을 베푸는 식이었다.

이들 세 사람의 지적은 모두 옳은 것처럼 여겨진다. 로마가 융성한 요인을 찾는다면, 이 세 가지를 전부 들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디오니시오스가 말한 종교, 폴리비오스가 지적한 정치체제, 플루타르코스가 말한 포용력은 모두 고대에는 이례적이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로마인의 개방적인 성향을 방영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p 279 맺음말
고대 로마인이 후세에 남긴 진정한 유산은 광대한 제국도 아니고, 2천 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서 있는 유적도 아니며, 민족이 다르고 종교가 다르고 인종이 다르고 피부색이 다른 상대를 포용하여 자신에게 동화시켜 버린 그들의 개방성이 아닐까?

우리 현대인은 어떠한가, 그로부터 2천 년이 지났는데도, 종교적으로는 관용을 베풀 줄 모르고, 통치에 있어서는 능력보다 이념에 얽매이고, 다른 민족이나 다른 인종을 배척하는 일에 여전히 매달리고 있다. '로마는 아득히 멀다'고 말하는 것도 시간적으로 멀다는 뜻만은 아니다.

※ 참고; 역사책 중에서 가장 빨리 읽히는 책이다. 나는 현재 8 권까지 읽었으며 계속 출간되는 대로 읽을 예정이다. 2 권 한니발 전쟁은 1 권보다 주제가 명확하고 단순하여 한결 더 재미있다. 4 권과 5 권은 상당한 분량이며, 모두 율리우스 시저에 대한 내용이다. 사실 전체 중에 이곳이 거의 핵심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시저에 매료되어 숭앙(崇仰)하는 기분으로 시저에 대해 적는다. 이런 태도가 역사의 객관성을 흐리게 할 수 있으나 냉철한 이성으로 서술하는 메마른 인물론보다 그 사람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게 하는 장점이 있다. 시저에 대해 남아있는 많은 기록과 저자의 감정으로 시저의 업적을 우리 앞에 되살려 놓았다고 볼 수 있다.